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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유토피아’ 적나라한 인간성의 민낯 파헤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빽빽했던 아파트 숲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대지진 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103동. 단 136세대의 입주민들만 집을 지켰다. 근처 고급 아파트 ‘드림 팰리스’ 주민들이 대놓고 무시했던 아파트다. 상황은 역전됐다. ‘드림 팰리스’ 주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다른 사람들도 애원한다.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남은 식량은 바닥을 보인다. 바깥은 온기 하나 없는 혹한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의 주민들의 이야기다. 단편 영화로 내공을 쌓은 엄태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영화는 자신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극한 이기주의부터 남을 챙기는 이상적인 이타주의까지 살아남은 자들의 다양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작은 ‘나름’ 민주적이다. 황궁 아파트 입주민들은 주민 대표로 ‘영탁’(이병헌 분)을 뽑고, 이들만의 규칙을 만든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이들을 발견되면 ‘바퀴벌레 무리’로 취급하며 가차없이 내쫓는다. 식료품은 아파트를 위해 수고한 만큼 차등 배분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균열이 드러난다. 떠밀리듯 주민 대표를 맡았던 영탁은 점점 권력의 맛에 취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한다. 가정과 공동체 규칙을 우선하던 공무원 민성(박서준 분)은 내적 갈등 속에도 영탁의 곁을 지키는 반면, 그의 아내 명화(박보영 분)는 외부인들도 챙겨야 한다며 대립한다.

영화는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했다. 다만 웹툰과 영화가 황궁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다.

엄 감독은 “원작은 아파트가 시스템이 갖춰지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외부의 시선에서 이상해진 공간을 바라보는 이야기에 한정된다”며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이 궁금해 이 부분을 좀 더 입체적으로 각색했다”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입체적인 캐릭터인 영탁이다. 영탁은 영화의 긴장감, 위트, 스릴을 대부분 책임진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한 것은 이병헌의 열연이다. 그의 신 들린 듯한 연기력은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병헌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재난보다 무서운 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영화가 재난 영화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엔 주민들이 상식적인 선에서 규칙을 정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자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선과 악의 구분이 없어지는 게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카리스마 있는 영탁과 대립한 명화 역을 맡은 박보영의 부담은 이병헌 만큼이나 컸다. 이를 눈치 챈 엄 감독은 박보영에게 영탁으로 분한 이병헌의 사진 한 장을 전송하며 이병헌을 생선 ‘갈치’ 취급하듯이 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영탁의 얼굴에 익숙해져서 주눅 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보영은 “병헌 선배의 사진을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저장한 뒤 매일 사진을 보면서 ‘난 할 수 있다’, ‘난 무섭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했다”면서도 “첫 테이크 때 병헌 선배를 마주하는데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완전 주눅 들었다”고 털어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배경인 황궁 아파트는 경기도 연천의 공터에 지은 3층 높이의 복도식 아파트 세트와 컴퓨터 그래픽(CG)를 합성한 결과물이다. 아파트 세트의 제작 기간만 5개월이 걸렸다.

영화는 아파트 주변의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물론, 추위와 싸우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입김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실제 촬영이 지금 같은 폭염기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다. 음악 역시 오프닝부터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섬뜩함을 선사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생각을 던져주는 영화’이라고 입을 모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은 “영화의 캐릭터들이 모두 상식선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관객들이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이 다를 수 있는데, 실제로 의견이 모두 분분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서준도 “컷 하나라도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들이 많은 영화여서 1만5000원의 영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박보영 역시 “다양한 인간성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은 본래 박해천의 한국 아파트 문화 연구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따온 가제였다. 그러나 엄 감독은 “콘크리트는 아파트를,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않는 이상적 공간을 상징하는데, 두 단어의 아이러니한 조합이 재미었었다”며 저자의 동의를 얻어 영화 제목으로 확정했다.

8월 9일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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