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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똑똑한 축소도시’ 라이네펠데의 혁신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인구 순유입 라이네펠데를 가다
외곽 줄여 인프라 도시중심으로
도시계획 ‘밖에서 안으로’ 전환
기차역 옆 시청 지어 기능 밀집
라이네펠데는 옛 동독시절 임대주택을 철거하고 도심 중심축에 새 거주지를 마련했다. 중심축을 중심으로 각종 인프라를 밀집시키는 방법으로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 사진은 라이네펠데의 새 거주지 풍경. [라이네펠데시 제공]

“대한민국이 인구소멸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을 ‘상징’하는 말로 인식됐지만, 17년이 지난 현재 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관련기사 3면

정부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현재 89곳이다. 하지만 2021년 감사원의 실태 보고서를 보면, 2047년엔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험지역으로 지정되고, 이 중 157곳은 고위험지역이 된다. 이후 약 50년(2067년), 100년(2117년) 후에는 고위험지역이 216개, 221개로 확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방도시의 인구소멸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헤럴드경제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인구 소멸을 막은 똑똑한 ‘축소도시’ 전략으로 이름이 알려진 소도시 라이네펠데-보르비스(Leinefelde-Worbis)를 찾았다. 라이네펠데는 독일 내에선 물론 지방인구소멸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나 일본 등에서 사례 연구로 주목하는 곳이다. 옛 동독시절 방적공장을 중심으로 급격히 산업화한 이 도시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급격한 인구 유출을 겪었다. 낡은 임대주택에 살던 청년들이 서쪽으로 떠나면서 빈집이 속출했고, 옛 방적공장이 폐쇄되면서 산업도 멈췄다. 그랬던 도시가 지금은 오히려 인구 순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과감한 도시축소를 전제로 계획을 세웠다. 기존의 건축물을 수리·개조했고, 일부 건축물의 감축·철거로 건축량을 줄여 도시재생을 꾀한 것이 통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라이네펠데 시청에서 만난 크리스찬 즈빙만 시장은 “지금도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출발해 카센주 빌헬름슈 역에서 한 차례 환승까지 하고 나면 독일 튀링겐 주 라이네펠데 기차역이 나온다. 기차역 바로 옆에 3층 남짓 규모의 아담한 시청이 있다. 이곳에서 현직 즈빙만 시장과 지금의 라이네펠데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낸 주인공인 게르트 라인하르트 전 시장을 만났다. 1945년 이 도시에서 태어난 라인하르트 전 시장은 통일 직후인 1990년 5월 첫 번째 자유선거에서 당선된 민선시장이다.

독일 통일 이전까지 고등학교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던 라인하르트가 시장에 나선 것은 세 가지 당면 과제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이 도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인구유출이 심각했고, 1960~1980년대 조립식으로 지은 주택공사 소유의 임대주택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방적공장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절실했다.

라인하르트 시장은 “통일 직후 라이네펠데의 평균 연령은 25세로 독일 전체에서 가장 젊었고, 전문학교 이상의 학력 소유자가 3분의1에 달했다”고 회고했다. 옛 서독과 지리적으로 맞닿은 접경지역이었던 만큼 청년들이 일자리가 많은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용이했다. 이 탓에 1994년 이후 연 평균 400명 이상 시 인구가 감소했고, 1996~1997년 사이 인구 감소가 최고점에 이르러 6% 급감했다. 방적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4000명 수준이던 관련업계 취업자 수는 10분의1로 줄었다.

라인하르트 전 시장은 “경제적 확대를 통한 재성장의 길은 가능치 않다고 평가했다”며 “한때 거대했던 방적공장에 남아있는 주민들에게 본격적인 도시개조 없인 미래가 없다는 점을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도시 리모델링은 지난 1992년 튀링겐주와 연방정부 사업인 ‘대규모 뉴타운재개발지원프로그램’ 지원금을 받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당초 이 프로그램은 튀링겐의 5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했던 탓에 라이네펠데는 자격조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대규모 건물의 수요보다 대규모 건물의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 신청자격을 얻어냈다. 이를 통해 1993년 다름슈타트의 건축사무소 GRAS와 계약을 맺고, ‘기존 임대거주공간의 수요는 30~50% 가량 줄어들 것이며, 기존 주택재고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분석과 진단을 받았다. 도시 재생의 기본 틀을 바탕으로 시의회는 1995년 ‘도시 기본계획’을 통과시켰다.

도시 기본계획의 핵심이 바로 ‘축소도시’ 전략이다. 먼저 동독시절 임대주택이 있던 지역인 남부신도시 중심지를 확정하고 이 곳을 중심 축으로 밖에서 안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난 2000년 1300여채에 달하던 외곽의 빈 주택 수는 2007년 300채 이하로 감소했다. 현직 즈빙만 시장은 “도시 기능을 중앙에 집중시키면서 학교나 유치원 등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차역 바로 옆에 시청 본관을 새로 지은 것처럼 도시 기능을 밀집시켰다는 것이다. 철거 과정에서 마찰은 없었을까. 라인하르트 시장은 “우리도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시민들과 수차례 만나 이주를 안내하고 소통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낡은 임대주택을 허물면서 대신 라이네펠데 시영아파트를 새로 지어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아울러 스포츠와 레크레이션 구역을 주택지에 포함시켰다. 라이네펠데에 지어진 새 주택은 시영 기업 두 곳이 소유하고 있다. 구조 변경 구역을 확정하고 해당 구역엔 새로운 투자를 막았다. 새로운 요구에 따른 융통성 있는 대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은 경제적 기반의 확보다. 라이네펠데는 독일 내 교통망의 연결점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지멘스 유통물류센터를 유치했다. 또 건물 개조, 철거와 관련된 경험을 살려 목수, 미장공, 건설 노동자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즈빙만 시장은 “최근 에너지 회사 등을 유치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해당 기업 유치가 성사되면 600~700명 규모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실업률은 1997년 19.6%에서 2005년 15.1%로 낮아졌는데, 이는 시가 속한 튀링겐주 평균 18.1%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라이네펠데의 경제가 안정되고 있다는 지표는 또 있다. 소득세는 지난 1991년을 기준으로 1997년 4배 증가했고, 2001년에는 12배 증가했다. 인구 유출의 악순환도 끊어졌다. 2012년 1만8548명이던 라이네펠데의 인구는 2022년 2만104명으로 늘었다. 특히 2019년 이후 지난해까지 최근 4년 동안 총유출보다 총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지점이다. 도시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취재팀과 함께 라이네펠데를 찾은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라이네펠데 사례는 저출산의 여파로 지방 소멸이 거론되는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생존 전략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거버넌스와 관련해 지자체장이 해당 지역의 비전을 형성하고 정부간 관계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출인구가 증가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중소도시는 라이네펠데와 같은 감축이나 철거방안이 진지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라이네펠데-보르비스(독일)=김용훈·김영철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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