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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컬렉션으로 하는 외교…伊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 가보니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컬렉션 한국 첫 전시
아트선재센터·대사관 등 4개 기관 협력
미래주의·앙포르멜·아방가르드 기조 보여줘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에트루리아인, 1976, 청동, 조각: 194 × 90 × 80 cm / 거울: 250× 200 cm,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전경 [파르네시나컬렉션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전신 거울 앞에 한쪽 팔을 들어올린 남자가 서있다. 손가락 끝이 거울에 닿을 듯 말 듯, 일보 직전의 순간이다.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청동 조각 ‘에트루리아인’(1976년)이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관람객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발상의 전환 덕에 미술사에서도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움베르토 바티니 베니스 국제대학 총장은 여기에 또 하나의 해석을 덧붙인다. 경고의 수준을 넘어선 기후위기의 측면이다. 그는 “최후의 재앙이 닥치기 전, 인류에게 남은 거리를 재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우리 행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1913, 청동 주물(2005-2011), 118 × 89 × 39 cm,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전경 [파르네시나컬렉션 제공]
외교부가 모은 현대미술의 정수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가 먼저 떠오르는 이탈리아. 그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다.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84)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1993년) 총감독의 기획 아래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미술 컬렉션 중 70여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컬렉션이자 외교협력부의 건물 이름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 로마 중심가의 팔라초 치기(Palazzo Chigi)를 사용하던 외교협력부는 이후 300년 역사의 이곳을 떠나 로마 변두리의 파르네시나로 이전한다. 현재 팔라초 치기는 총리관저로 쓰이고 있다. 고전적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던 치기와 달리 파르네시나는 수직과 수평의 언어로 건축된 모던한 건물이다. 단순하고 평범한 이 건물은 이후 40년 간 이렇다 할 ‘장식’없이 방치되다시피 했다.

독일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바티니 총장은 1998년 귀국하면서 파르네시나가 너무 텅 비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탈리아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이곳을 찾는 외국 VIP들에게 알려야겠다 생각했던 그는 미술품을 선택한다. 친분이 있던 작가들에게 작품을 대여했고 이렇게 하나둘 도착한 미술품들이 파르네시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현재는 7층 건물을 가득 채운 상태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이탈리아 현대 미술품 컬렉션인 ‘파르네시나 컬렉션’의 시작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전경 [이한빛 기자]
어서와, 이탈리아 현대미술은 처음이지?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컬렉션’이라는 이름과 달리 소장품은 아니다. 기관이나 개인 컬렉터, 작가들에게 대여해 전시한다. 바티니 총장은 “위대한 재능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소장보다는 대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진화하는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정 작품이나 미적 기준에 대한 관성적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다양한 예술 사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변화하는 이탈리아의 예술적 파노라마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1910년대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주요 작업이 망라된다.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움베르토 보초니(1882∼1916)의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의 청동 버전, 2007년 덕수궁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던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1901∼1980)의 청동 조각 ‘말’, 깡통에 자신의 대변을 넣고 밀봉한 ‘예술가의 똥’으로 유명한 피에로 만초니(1933∼1963)가 자신의 발자국을 나무에 표현한 ‘마법의 발판’ 등이 왔다.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전경 [이한빛 기자]
잘 만든 컬렉션, 외교의 중요 축으로

기획자인 아킬로 보니토 올리바는 이탈리아의 저명 미술 평론가이기도 하지만,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당시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1995년에는 백남준을 도와 한국관이 오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인물이다. 전시장을 찾은 그는 “이탈리아 현대미술은 ‘창의적 기풍’을 저변에 깔고 있다”며 “표현 언어와 방식이 무척 풍부하며, 하나의 예술 운동에 머무르지 않고 혼종적 양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미래주의와 앙포르멜, 아방가르드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미술 운동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시는 순회전으로, 앞서 일본, 인도,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8월 20일까지 선보인 후 북미로 이동할 계획이다. 예술을 외교의 중요 축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바티니 총장은 “세계 곳곳에 있는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알렉산드로 데 페디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공공문화외교국 국장도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와 한국 간 하나의 대화이자 새로운 다리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전경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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