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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에 갇혀 피폐해지는 삶·감정...“자신을 위해 사는 용기 있었으면”
영화 ‘비닐 하우스’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이솔희 감독·문정役 김서형, 스토리 소개

힘겨운 삶의 무게. 누군가는 살아내고 누군가는 포기한다.

영화 ‘비닐 하우스’에서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비닐하우스는 남편을 잃고 아들은 소년 교도소에 보낸 주인공 문정(김서형·사진)이 지내는 곳이다. 문정은 고급 주택에 사는 노부부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돈을 모은다. 이유는 단 하나. 비닐하우스를 탈피해 아들과 함께 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시력을 거의 잃은 할아버지와 치매 할머니를 성의껏 돌보는 문정. 그러나 의도치 않은 사고로 할머니가 목숨을 잃고, 문정은 이를 감추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린다. 일상적인 소재가 서스펜스로 바뀌는 순간이다.

‘비닐하우스’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 등 3관왕을 수상한 작품으로 단편 영화로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솔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돌봄’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자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자의 삶을 번갈아가며 관찰한다.

문정은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타인을 돌보기만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노부부를 돌보고, 자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든 노모를 돌본다. 그리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들마저 정성껏 챙긴다. 반면 자신을 돌보진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때리며 자학한다. 힘겨운 삶의 굴레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낸다.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고 눈빛엔 불안과 절망만 가득하지만 아들과의 미래를 꿈꾸며 버티고 버틴다.

노부부는 건실한 단독 주택에서 살며 문정의 돌봄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무게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노부부. 치매 할머니에 이어 자신마저 치매 초기에 접어들자 할아버지는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자진해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이 감독은 11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 입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영화는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했다”며 “돌봄으로 얽힌 인물들의 깊고 어두운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스토리를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김서형의 연기력이다. 김서형은 드라마 ‘종이달’에서 남편에게 핍박 받는 유이화로 분한 데 이어 또 다시 삶이 부친 캐릭터를 맡았다.

김서형은 비극의 연속인 문정의 삶을 그대로 표현했다. 온갖 노력과 수고에도 문정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 역시 계속 엇나간다. 선한 의지로 살아온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의기소침한 채 살다가도 어느 순간 자학하며 폭발한다. 타인에게 친절하다가도 차갑게 선을 긋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만 희망 한 줄기에 손을 뻗는다. 그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김서형은 “피하고 싶은 여자였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엄청 울었다”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왜 그런 삶은 착한 사람에게 와야 할까’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걸어온 삶, 걸어가야 할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나리오였다”며 “(극 중 문정의) 피폐해지는 감정을 저조차 보기 싫었던 것 같고, 작품을 만나고 나서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영화가 힘겨운 삶의 굴레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삶이라도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한다.

이 감독은 “그럼에도 살아낼 수 있고, 희망이 있고, 큰 욕심을 가지지 않아도 살아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조금 이기적이지만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26일 개봉. 100분. 15세 관람가.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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