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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 피해자가 용의자 됐다…기가 찬 사건 전말[이현정의 현실 시네마]
엠마 매니언이 경찰 조사 받는 CCTV 장면.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강간 허위 신고는 범죄에요."

미국 앨라배마의 대학생 엠마 매니언은 지난 2016년 성폭행 피해자로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으로부터 이같은 말을 듣습니다.

엠마는 사건 당일 파티에 알게 된 두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두 남성이 그를 차에 강제로 밀어 넣은 뒤 범행을 저지른 겁니다. 엠마는 곧바로 병원에 가는 동시에 경찰에도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엠마가 사흘 뒤 가진 경찰 조사에서 취조에 가까운 조사를 받는 겁니다.

"증거 영상 다 확보했는데, 당신이 차 앞에서 가해자랑 키스하는 게 확인돼요."

"솔직하게 말 안하고 있는거죠?"

엠마는 당시 술을 마셨던 상태였지만 성폭행 기억은 너무나도 뚜렷했습니다. 반면 가해자와 키스했던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다 확인했다는 경찰의 말에 엠마는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죠.

'정말 내가 그랬나?', '그런 기억이 없는데...'

엠마의 반응을 보고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경찰.

"감시 카메라가 몇 대나 있는지 알아요?"

"진짜 피해자를 이용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트라우마와 기억의 혼란 속에서 힘겨워하던 엠마는 결국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리곤 그날 그의 손엔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혐의는 허위 신고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엠마가 성폭행 허위 신고로 체포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다 알려졌습니다. 그의 머그샷 사진과 함께 말이죠.

엠마는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엠마 매니언. [넷플릭스 제공]

그는 지역 언론사의 기자인 레이첼 드 리언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경찰을 상대로 증거 자료를 공개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곤 결국 그 문제의 키스 영상을 확보했죠.

확인해보니 누군가가 차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엠마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은 영상 내 인물이 누군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증거로 활용한 겁니다. 알고 보니 사건 현장엔 CCTV조차 없었습니다.

리언 기자에 따르면 이렇게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사례는 엠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리언 기자가 확인한 사례만 200여 건. 어느 여성은 성폭행 신고 12시간 만에 허위 신고죄로 구치소로 향했고, 어느 여성은 억울함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반면 가해자에 대해선 신원 확인조차 하지 않거나 가해자 조사를 하더라도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경찰의 조사 패턴은 한결 같았습니다. "영상 증거랑 당신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 뒤, 점점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 부칩니다. 트라우마와 기억 혼란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결국 자신의 진술을 철회합니다. 경찰은 이를 역이용해 그들에게 수갑을 채웁니다.

이러한 경찰의 수사 행태는 경찰의 편의 차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폭행 신고 건수는 급증하는 반면 수사 인력은 거의 충원되지 않는 현실. 그러자 경찰은 피해자를 압박해 신고를 철회하도록 한 뒤 허위 신고 혐의로 피해자를 기소합니다. 이렇게 하면 굳이 성폭행 사건을 조사할 필요가 사라지는 거죠.

[넷플릭스 제공]

이 이야기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 '피해자/용의자'입니다. 다큐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바뀌는 억울한 사례들, 그리고 이런 일이 미국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사회적 원인을 파헤칩니다.

리언 기자는 자신의 취재는 경찰 수사에만 국한돼 있을 뿐, 이 문제는 검사, 사법부, 정치 영역까지 얽혀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엠마는 성범죄 수사 교육에 참여한 수사관들에게 이렇게 강조합니다.

"전 피해자에서 용의자가 됐고, 성폭행을 처리할 권한이나 존엄성을 갖지 못했어요. 생존자가 당신의 도움을 받으러 왔는데, 그 사람을 돕지 않으면 괴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됩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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