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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의 또 다른 주인 ‘대통령의 나무’
산림녹화 뜻 담은 이승만 대통령의 전나무
88올림픽 성공 기원하는 노태우의 구상나무
애국을 강조하는 김대중의 무궁화
그중 최고 터주대감은 745살 ‘주목’

청와대 관저 앞, 두 대통령의 식수가 동거하고 있다. 1991년 관저 준공을 기념해 노태우 대통령이 세 그루를 심었으나, 한 그루가 죽자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같은 종의 소나무(가장 왼쪽)를 심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거처였던 청와대. 영욕의 세월을 함께 한 것은 비단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만이 아니다. 경내를 지키고 있는 나무도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청와대 관저 앞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두 그루는 노태우 대통령이, 나머지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었다. 어쩌다 한 곳에 두 대통령이 식수한 나무가 나란히 서있을까.

‘청와대의 나무들’ 저자인 박상진 경북대 교수는 1991년 관저 준공을 기념해 노태우 대통령이 세 그루를 심었으나, 하나가 죽자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비슷한 연생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죽은 자리에 다시 심는다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다”며 “파격적인 면모가 있다”고 말했다. 기념 식수에 사용되는 나무는 보통 20~30년생인데, 당시 노 대통령은 이미 심어진 두 그루의 나무와 굵기를 맞춰 나무를 심도록 지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 식수인 산딸나무 [연합뉴스]

김영삼 대통령이 선택한 나무는 산딸나무다. 구 본관터에 있다. 박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장로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기독교와 연관 있는 나무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서양 민담 중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가 산딸나무 종류인데다 나무 모양이 십자가를 연상시키기에 기독교와 연관이 있는 나무로 불린다. 또 다른 장로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도 백악정 앞에 산딸나무를 심었다.

박 교수가 찾는데 가장 애를 먹었던 나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인 전나무다. 국가기록원에는 1960년 3월 25일 기념 식수하는 사진이 있다. 상춘재 옆 계곡에 10년생 정도 되는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이후 청와대에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고, 식목도 울창해져 위치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식수하고 세운 팻말이 나무라 썩어 없어져 버렸다”며 “사진 귀퉁이에 있던 건물 한 모서리를 보고 위치를 겨우 짐작했고 이 나무를 찾았다. 70살이 조금 넘어 수령도 맞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헐벗었던 산을 푸르게 하고자 산림 녹화와 목재 자원 공급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기념 식수로 전나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기념식수인 전나무. 수령이 70세가 넘었다. [연합뉴스]

기후가 맞지 않는 곳에 심었는데도 잘 성장하고 있는 나무는 노태우 대통령의 식수인 구상나무다. 제 24회 서울올림픽 성공을 기념하며 1988년 식목일에 심었다. 구상나무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수목으로 학명(Abies koreana)에도 ‘코리아나’가 들어있다. 그는 “구상나무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며 “보통 산꼭대기에 사는데, 이렇게 따뜻한 서울에서도 잘 자리잡은 건 1991년 지어진 본관 건물 때문에 바람골이 생겨서 그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나라 꽃인 무궁화는 대통령들의 단골 식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정원에, 김대중 대통령은 영빈관 앞에 심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당시 무궁화 전문가로 잘 알려진 심경구 성균관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가장 좋은 나무를 심었다. 그는 “홍단심 무궁화로, 애국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는 것이 박 교수의 추측이다.

김대중 대통령 기념식수인 무궁화 [연합뉴스]

이 밖에도 상춘재에 문재인 대통령의 동백나무와 전두환 대통령의 백송, 소정원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팝나무, 영빈관엔 박정희 대통령의 가이즈카 향나무가 있다.

대통령 공식 식수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추정되는 나무도 있다. 구 본관 뒤의 모감주나무가 그 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한 기록은 없다. 1976년 박 대통령이 현충원에 같은 크기의 나무를 청와대와 함께 심었다는 기사가 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모감주나무를 좋아해 녹지원 동쪽에 심었다. 초여름 노란 꽃이 화사하게 피는 모감주나무는 그 열매가 딱딱해 염주를 만드는데 썼다.

청와대 최고 터줏대감으로 추정되는 주목. 수령 745세로 고려 충렬왕 시대부터 자리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 [이한빛 기자]

가장 오랜시간 청와대 터를 지킨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는 구 본관터의 ‘주목’이다.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이라 불리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주목의 나이는 745세다. 주목이 이곳에 자리잡은 시기는 고려 충렬왕(127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옮겨 심었다, 아니다는 주장이 엇갈리지만 원래 있었다면 청와대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하나 하나 스토리가 있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는 수목탐방 프로그램은 매일(화요일 휴관) 오전 11시와 오후 4시에 상춘재에서 시작해 본관-영빈관까지 이어진다. 전문 해설사가 60분간 진행하며 별도의 신청 없이 청와대를 찾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물과 편한 운동화는 필수다.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식수 ‘전나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식수 ‘가이즈카 향나무’,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 기념식수 ‘백송’, 노태우 전 대통령 기념식수 ‘구상나무’,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식수 ‘산딸나무’,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식수 ‘무궁화’,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 ‘소나무’,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식수 ‘무궁화’, 박근혜 전 대통령 기념식수 ‘이팝나무’,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식수 ‘동백나무’(왼쪽부터 시계방향) [연합뉴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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