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고3, 둘째가 고1입니다. 첫째 입시를 준비하면서 대한민국 입시는 확실히 잘못됐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판을 뒤흔드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공정 수능’이 가장 간절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다. ‘인(in) 서울’을 목표로 자녀 입시를 준비 중인 학부모 인터뷰이 5명이 학원비로만 매달 150만~2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위 SKY로 불리는 최상위권 명문대 진학 희망자만 사교육에 매달리는 게 아니다.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최근 2주는 그야말로 ‘카오스(chaos·혼돈)’였다. 15일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의 출제를 배제”하라고 주문한 게 시작이었다. 곧바로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다. 대통령실이 3월부터 ‘공정 수능’을 위해 킬러 문항 감소를 지시했으나 6월 모의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수험생들은 당장 6월 모의평가 결과를 실력 가늠자로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6월 모의평가와 9월 모의평가를 기준점 삼아 정시 공부 방향을 수정하고, 수시 원서 접수 기준점을 설정하는 수험생에게는 나침반이 사라진 셈이다. 초점은 수능 난이도로 옮겨갔다. 킬러 문항 배제가 ‘물수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물수능’은 많은 것을 바꾼다. 배점이 낮은 문제에서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공부 전략을 바꿔야 한다. 최상위권과 상위권이 뒤엉켜 정시 원서 접수도 ‘눈치 게임’이 된다. 하향 지원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학교·학과가 ‘폭발’하고 최상위권 학교·학과에서 미달 사태가 발생한다.
지난 26일 킬러 문항이 공개된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됐다. 교육부는 2021~2023년 세번의 수능과 지난 6월 모평에서 국어, 영어, 수학 과목 기준 총 22개의 킬러 문항으로 지목했다.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장 6월 모의평가 국어(공통)에서 킬러 문항으로 지목된 2개 문항 모두가 EBS 교재에서 나온 지문이다. 수학 킬러 문항을 본 한 수험생은 “과거 기출에도 여러번 나온 ‘기출 변형’인데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킬러 문항을 분석한 사교육업계 인사 또한 킬러 문항은 ‘어려운 문제’라는 점만 공통점이라고 지적했다.
불안해하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교육부는 “킬러 문항 배제가 쉬운 수능을 말하는 건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킬러 문항 대신 준킬러 문항이 많아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공정 수능은 물수능, 불수능과 관련이 없다”는 답변만 했다.
입시 당사자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불수능이라면 어려운 문제를, 물수능이라면 실수하기 쉬운 문제를 집중 학습하면 된다. 수능 출제 방향이 안개 속을 헤매면 학생들은 ‘멘탈 관리’까지 해야 한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물수능이라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9월 모의평가를 앞두고 ‘공정 수능’에 대한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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