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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표상·예매처, 칼과 방패의 싸움”
브루노마스 2000만원·싸이 3배
암표 신고건수 2년 만에 11.7배 ↑
매크로 활용...조직적 형태 진화

#1. “브루노 마스 8연석 1억8000만원에 양도합니다. (ID 2개 양도)”

세계적인 팝 스타 브루노 마스의 9년 만의 내한 콘서트. 10만1000명의 관객과 만난 마스의 공연 전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기상천외한 가격의 게시물이 등장했다. 동시 접속자수 116만 명을 기록한 마스의 콘서트는 말 그대로 ‘예매 전쟁’이었다. 그 결과 암표도 기승을 부렸다. 8연석에 1억8000만원을 책정, 장당 2000만원 가량까지 치솟기도 했고, 장당 100만원대에 양도한다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2. ‘여름 특수’의 대명사인 가수 싸이의 ‘흠뻑쇼’. 해마다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불러오는 싸이의 공연은 올해에도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대기 번호만 해도 무려 3만 번대. 결국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양도 거래 티켓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대리 티켓팅이 넘쳐났다. 가격은 기존 티켓 가격의 2~3배. 내한 팝스타보다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경쟁에 불이 붙었다.

중고거래 티켓 사이트에 올라온 브루노 마스 공연 티켓 거래창 [인터넷 캡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암표상도 진화하고 있다. 대형 콘서트장과 스포츠 경기장 입구에서 웃돈을 주며 암암리에 사고 팔던 암표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나날이 ‘스마트’해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지난해 4224건으로 2년 만에 11.7배 가량 급증했다. 암표 거래는 장르를 막론한다. 대형 팝스타부터 뮤지컬, 팬미팅은 물론 최근엔 공개 방송까지 거래된다.

최근의 암표 거래는 ‘조직형’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코로나 팬데믹 전인 2019년만 해도 보이그룹 워너원의 콘서트가 열린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선 현장 암표상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에는 다수의 암표상들이 매크로를 통해 티켓을 ‘싹쓸이’한 뒤 비싼 가격에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조직화된 암표 거래를 잡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의 강수현 콘서트컨설팅팀 매니저는 “매크로를 100%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단지 손이 빠른 예매자의 구매인지, 매크로 업체인지 확인이 어렵고 (매크로 암표상은) 규제를 피해가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어 예매처 입장에서도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예매 사이트에서 부정 예매를 방지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동일 IP(주소)의 다수건 구매 모니터링 ▷특정 상품의 반복적인 ‘무통장 미입금’ 상태의 취소 ▷과도한 예매 페이지 호출 등의 행동을 할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이에 예매 사이트들은 매크로를 사용하더라도 보안 문자 6자리를 입력해야 예매를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업화된 암표상에게 이 정도의 절차는 우습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보안 문자 인식도 1~2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예매처와 매크로 암표상이 팽팽히 맞서며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공연기획사에선 신고와 제보를 통해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 브루노 마스, 해리 스타일스, 마룬파이브 등 대형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을 주관한 라이브네이션코리아의 김형일 대표는 “암거래되는 티켓 좌석을 기획사에서 임의로 취소할 수는 없다”며 “다만 관객들이 제보해주는 것을 토대로 5초에 5장씩 예매되는 등 명백하게 매크로로 보이는 예매건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크로 암표상은 비단 국내 공연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티켓이 오픈되자 예매처인 티켓 마스터는 3일 간 서버가 다운됐다. 당시 트래픽의 70%가 매크로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대표는 “조직적인 활동이 많다 보니, 팬과 아티스트만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고, 예매처는 이러한 부정거래를 막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며 “암표상과 예매처는 칼과 방패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거래 티켓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다수의 K-팝 공연에선 예매자와 관객이 동일인일 때만 입장을 허락하고 있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엔 한 관객이 500만원 이상의 가격을 주고 티켓을 예매했으나 예매자와 동일인이 아니라 입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암표상들은 현장에서의 신분증 확인 절차 관문을 넘기 위해, 예매 티켓을 구매자의 아이디나 계정으로 옮겨주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공격이 방어를 앞선다. 암표상의 맹공을 100%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부회장은 “티켓 거래의 부정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가장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엔 공연법 일부가 개정, ‘부정 판매’ 방지를 위한 노력과 ‘매크로’를 통한 입장권 판매를 해선 안된다는 규정이 생겼다. 내년 3월 31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이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선 아직 물음표다. 공연, 전시 IP(지적재산권)를 다루는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변호사는 “개정안에는 ‘상습 또는 영업’이라는 문구가 있어 1회성 판매, 판매가 금액 허용 범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며 “뿐만 아니라 암표상은 징역 1년 이하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는데, 암표상이 취하는 이익에 비해 수십, 수백배는 적다”고 말했다. 암표 거래를 뿌리 뽑으려면 몰수나 추징같은 징벌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게 백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경범죄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핵심은 ‘상습 또는 영업으로 정보통신망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팔거나 이를 중개한 사람’을 처벌 대상에 추가하는 것이다. 이 의원은 “누군가가 표를 싹쓸이해 암표 매매가 이뤄지면 아티스트와 공연 산업 종사자에게도 피해를 줘, 한 나라의 문화예술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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