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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운산 장군 순국 78주년 추모식…“봉오동 전투의 숨은 영웅”
최진동·최운산 형제 봉오동 전투 총사령관, 참모장
당시 간도 제일 거부로 조선 독립군 육성 본산 역할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최운산 장군 순국 78주기 추도식을 7월 5일 오후 2시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연다고 23일 밝혔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공]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는 최운산 장군 순국 78주기 추도식을 7월 5일 오후 2시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연다고 23일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부,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후원으로 이번 추모식을 거행한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추모식에서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의 희망이 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승리의 실질적인 주역 최운산 장군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와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최운산 장군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이후 봉오동에서 조선군의 첫 항일전 승리를 이뤄낸 숨겨진 영웅이다.

조선은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국권을 빼앗겼고 조선 국민은 10여년이 넘는 기간 나라를 빼앗긴 설움 속에 온갖 괄시와 압박을 견뎌내고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기미독립선언서로도 불리는 3.1 독립선언서는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한다.

독립선언서 선포와 함께 전국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만세’를 외쳤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이들이 사살되거나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인 1920년 항일 조선독립군은 봉오동 일대에서 일본군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울분을 삼키던 국민들은 환호했고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주역들은 민족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홍범도, 김좌진 등 당시 승리의 주역들은 모두 최진동 대한북로독군부 총사령관 휘하 부대의 연대장을 맡고 있었다.

최운산 장군은 최진동 총사령관의 동생으로 당시 참모장을 역임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최진동, 최운산 형제가 당시 조선땅인 간도의 최대 거부로서 봉오동사관학교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북로군정서 창설을 주도했다고 전한다.

또한 최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간도의 드넓은 토지와 풍부한 물자를 독립군에 제공해 정규군과 다를 바 없는 독립군을 양성할 수 있었다.

최운산 장군은 앞서 1912년 봉오동에서 운영하던 사병부대를 모체로 1919년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했고, 이듬해인 1920년에는 주변 여러 독립군 부대를 결집한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해 봉오동전투에 직접 참전했다.

대한북로독군부 총사령관은 형인 최진동 장군이 맡고, 최운산 장군은 총사령관을 보좌하는 부사령관격인 참모장을 맡았다.

하지만 훗날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참전한 일부 인사들만 알려져 영웅으로 회자됐을 뿐 주역인 최씨 일가 인물들은 대부분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기념사업회는 최운산 장군 등의 유적 발굴 및 알리기에 나서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봉오동 일대 독립군 기지 연병장터, 3개동의 막사터 등이 공개된 바 있다.

이래경 최운산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행은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북간도 무장 독립전쟁의 바른 역사를 널리 알리고 최운산 장군을 비롯해 그동안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한 독립군들의 삶을 재조명할 것”이라면서 “만주 무장독립전쟁의 승리가 그동안 알려진 바와 같이 몇 명의 영웅에 의한 신화적 승리가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희생과 노력 끝에 이뤄낸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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