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선 복용기준 질문 줄어들 듯
술담배 구매는 기존 연 나이 유지
복권·청소년 보호 규정은 손질중
3년 전에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 도반선(22)씨는 한국의 만 나이 통일이 반갑다. 반 씨는 “저는 ‘한국 나이 22살, 베트남 나이 21살’ 이렇게 따로 소개한다. 지금은 쉽지만 처음에는 한국 나이에 익숙해지는게 어려웠다”며 “앞으로는 구분 없이 말할 수 있어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한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이 오는 28일 본격 시행된다. 기존에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 돼 해가 바뀌면 나이를 먹는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추가되는 ‘만 나이’, 기준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연 나이’까지 총 3개의 나이가 혼용됐다.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으로 법령, 계약서 등에서 나이 계산과 표시 원칙이 만 나이로 명확해진다.
▶알쏭달쏭 유학생 나이 만 나이로...약국도 환영=‘글로벌 기준’인 만 나이가 기본이 되면서 특히 한국에 온 외국인, 이들과 교류하는 한국인, 해외에 나갈 한국인들 등 글로벌 교류를 이어가는 이들이 환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숙명여대 유학생 교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임세현(23)씨는 유학생과 한국 학생 간 소통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고 봤다. 임씨는 “기존에는 유학생들은 한국 나이 개념을 익히거나 한국 학생들이 태어난 연도를 말하는 방식으로 서로 소개했다. 문화가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만 나이에 익숙해지면 글로벌 기준에 맞춰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국대 유학생-한국 학생 친목 동아리를 운영 중인 이모(28)씨 또한 “한국 나이 개념을 설명하니 ‘내 나이가 23살인데 갑자기 2살 더 먹은 25살이 되네?’라며 신기해한 유학생도 있었다. 여기에 빠른년생까지 알려주면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넘어가는 학생들도 많았다”며 “이제 서로 소개할 때 만 나이로 정리하면 되니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 속 혼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약국에서 근무 중인 약사 김모(31)씨는 “특히 어린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 중 약에 기재된 복용 기준이 만 나이인지, 연 나이인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0~7세 1알 복용’, ‘8~12세 2알 복용’이라고 기재돼있으면 나이 기준이 만 나이인지, 연 나이인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 모두 만 나이로 이해하면 된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나이 개념 변화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에서도 서열에 따라 명칭을 다르게 하는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 변화, 기업 문화 변화와 맞물려 만 나이가 (사회적 나이로) 쉽게 정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전세계 유례 없는 ‘한 살 어려지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술·담배는 연 나이, 복권은 만 나이=이른바 스포츠 토토로 불리는 ‘체육진흥투표권’을 구매할 수 있는 연령(현행 연 19세 미만 판매 제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체육진흥법’ 상 ‘만 19세 미만’ 사람에게 판매할 수 없는 법안이 발의(유상범 국민의힘 대표)돼 있다. 2004년 12월생인 A씨는 연 나이 19세, 만 나이 18세로 현행법상 체육진흥투표권 구매가 가능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토토를 살 수 없다.
‘청소년 보호’ 관점에서 범죄 피해자 대상 규정 또한 만 나이로 통일하는 법안도 발의가 돼 있다. 정부 여당은 올해 법안을 통과시키는게 목표다. 법안이 통과되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보호 대상은 기존 연 나이 19세 미만에서 만 나이 19세로 확대된다. 피해자 구제·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미성년자 보호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다만 연 나이 개념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술·담배 구매 가능 연령은 연 나이 20세부터, 병역 의무자는 연 나이 18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나이는 연 나이 7세(만 6세가 된 해의 다음해 3월에 입학)부터다. 기존과 동일하게 연 나이가 기준이 된다. 입학 시기나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시기는 문화적 특성이 있어 만 나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문화적 갭이 생길 수 있어서다. 법제처는 연말까지 만 나이 통일법 시행을 앞두고 연 나이가 규정된 법안의 기준 수정에 대해 부처와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