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조 대변화 예고에 불안감 토로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A씨(46)는 지난 주말 입시 컨설팅을 수소문했다. A씨의 아들은 의과대학과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를 목표로 하는 이과 최상위권 학생이다. A씨는 “최근 대통령 발언으로 수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6장의 지원서를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해져 입시 컨설팅까지 알아봤는데 기본 1시간에 45만원이고 비싼 곳은 80만~100만원”이라며 “이렇게 비싸도 한번 컨설팅을 받으면 다시는 받을 수 없다. 입시 컨설팅은 요즘 주춤하는 추세였는데 사람들이 몰릴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이렇게 큰 변화를 예고하면 수험생과 학부모만 힘들어진다”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배제 방침을 밝히면서 교육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교과 과정 밖에서 출제돼 사교육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부 문제를 지적했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입시를 준비 중인 수험생에게는 청천벽력이다. 입시 컨설팅 등 사교육이 더 증가하는 풍선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목소리도 높다.
20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한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정부의 수능 대책에 우려를 표했다. 특히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 상태다. A씨는 “고3 아이들을 둔 학부모 카카오톡 단체방이 난리가 났다. 당장 우리 아이부터 ‘이번 수능 어떻게 해야 하냐’며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수시, 정시 등 입시가 복잡해 정보를 얻느라 힘든데 불확실성까지 커지니 사교육에 오히려 더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입시 전문가들도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정부 목표와 달리 단기적으로 사교육 수요를 증가 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당장 6월 모의평가 결과를 입시 전략에 쓸 수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9월 모의평가에 수정된 기조가 반영된다 해도 수시 원서 접수는 9월 모의평가 점수가 나오기 전에 끝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어제까지 공부한 내용을 폐기하고 기존 킬러 문항과 다른 유형의 변별력 있는 문제 대비, 수시와 정시 입시 전략 수정 등 그야말로 판이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이런 진단은) 업계가 사교육을 조장하는게 아니라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수험생 불안함을 줄이려면 6월 모의평가 결과에 대한 특별 브리핑을 해야 한다. 각 문항 별로 등급별 정답률 등을 공개하고, 잘못된 킬러 문항이 있다면 어떤 점이 문제인지 명확히 알려야 혼선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심상치 않은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9일 이규민 제12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은 6월 모의평가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능 5개월을 앞두고 출제 기관장이 사임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월부터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했으나 이같은 내용이 6월 모의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같은 날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학생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 학원만 배불리는 사태에 대통령이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했다”고 밝히며 킬러 문항 배제에 대한 확실한 의사를 전달했다.
고등학교 1,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걱정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B씨(50)는 당장 입시 전략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다. B씨는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공감한다. 중위권인데도 학원비가 한달에 150만원은 나오는게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면서도 “고2인데도 입시 전략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다. 기존에는 수시와 내신 위주로 학원을 다녔는데 앞으로는 정시 준비 비중을 높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고3 학생과 학부모 혼란은 더 클 것이다. 입시 기조 변화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 하는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입시설명회에도 학부모들이 몰리고 있다.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 중인 1학년 딸을 둔 40대 아빠 C씨는 “아내가 (19일) 경기도에서 하는 입시 설명회를 갔다. 고1 학부모 대상이었는데도 자리가 꽉 찼다”며 “아직 수능까지 시간이 있지만 입시 정책 기조가 바뀌는 분위기다보니 불안함이 크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주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수능이 쉬워지면 내신이 중요해지는데 외고를 괜히 보냈나 하는 주변 부모들 반응도 많다”고 전했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