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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로마 왜 붙어다닐까..유럽의 원조? [함영훈의 멋·맛·쉼]
국립중앙박물관 4년간 무료 상설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유럽제국이 로마의 후예라면서 내세운 신성로마제국은 과연 로마제국의 후손들일까.

그리스와 로마는 별개의 문화이고, 심지어 앙숙일 수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리스·로마를 한데 묶어 부를까.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왜 500년 만에 망했을까. 그것도 동방의 흉노에 쫓겨 서진하던 게르만에 의해 ‘툭 치니 그냥 넘어갈 정도로’ 손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럽을 통합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15일 국민에게 무료 공개되는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로마실. 로마의 빌라 모습으로 꾸몄다. 가운데는 귀족들의 회식 ‘심포지움’ 한상 차림.
4년간 진행될 ‘그리스·로마’ 전시의 최고 걸각으로 평가받는 로마 시민 모습의 조각품, ‘토가를 입은 남성의 초상’

▶그리스·로마 정복당한 나라들= 우리는 유럽사를 살펴보면서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듯한 구석, 연결고리가 미약한 대목을 여러 곳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자신의 원조로서 그리스·로마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구조가 묘하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한뒤 그리스 문화를 배운다. 유럽-아시아 경계선 쪽에 있던 게르만은 로마를 정복한뒤 로마의 문화,예술,정치,거버넌스를 따르고 배우며, 심지어 ‘후예’라고 자처한다. 이에 비해 유럽 각국은 다른 대륙을 침략 점거한 뒤, 그 나라 문화말살, 인종개조를 감행한다.

이 모든 동서고금의 정치-경제-예술-문화인류학적 행태의 진원지는 바로 로마, 정확히는 그리스·로마이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
명상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그리스·로마를 바로 알아야 세계사의 본질을 알고, 요즘 아시아-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다시 읽기’ 작업의 방향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온 그리스·로마, 우리의 역사 읽기는?= 그리스·로마가 한국에 상륙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상설전시관에 ‘고대 그리스·로마실’을 신설하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를 15일부터 2027년 5월 30일까지 4년간 전시한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서양 고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과 공동 기획했다.

사실 그리스·로마이전에 이집트 문명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로마는 그리스를 배웠지만, 그리스(마케도니아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를 배우고도, 현장에서는 왕가의 신 호루스를 스핑크스로 격하하는 등 이집트 문명을 폄훼하고 말살하려 하거나 ‘원래 내것’이라고 주장하려 했음은 알렉산드리아, 에드푸, 카이로 등 이집트 도시의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음에도, 이집트·그리스·로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를 그린 킬릭스

다시 그리스·로마로 돌아오면, 이번 신설되는 전시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19년부터 조성한 이집트실(2019~2022년), 세계도자실(2021~2023년), 메소포타미아실(2022년~현재)에 이어 개최하는 네 번째 세계 문명·문화 주제관이다.

중박은 고대 그리스·로마실 신설 역시 상설전시관에서 세계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세계문화관 연차 운영계획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고 했는데, 기초 공부를 하고 문명의 시원인 이집트실, 최고문명을 가졌고 ‘비잔틴,동로마의 아버지’인 메소포타미아실을 거쳐, 그리스·로마실을 간다면 보다 입체적인 문화향유가 되겠다.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이집트 침략 이후 쪼아서 말살시킨 이집트 에드푸 신전의 부조

▶로마법에서 게임 캐릭터까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모두 대상으로 하는 전시는 드물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열렸던 그리스, 로마 관련 전시는 대부분 그리스나 로마 중 한쪽에 집중했다. 물론, 그리스를 주제로 한 전시에도 필연적으로 로마 시대 작품이 다량 포함되곤 했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그리스와 로마 두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두 나라의 신화와 문화를 살펴보려 한다는 점에 차별점이 있다고 중박은 설명한다.

인류의 역사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유산은 넓고도 깊다. 민주정, 로마법, 철학과 같이 오늘날의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도적 유산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 컴퓨터 게임, 영화, 브랜드를 한국인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역동적인 역사와 풍요로운 문화를 가졌음에도 두 나라를 이렇게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0년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기엔 무리지만 굳이 말하자면, 망했어도 침략자가 자신을 따라 배우는 바람에 그리스가 살았고, 로마도 망했지만 침략자인 게르만이 배웠기에 로마가 살았다.

원조라던 그리스·로마에 대한 ‘후예’의 도발은 예상됐던 것이었다. 게르만이 분화되어 프랑크, 신성로마제국 등 과정을 거친다. 4세기 로마가 국교로 삼은 크리스트교에 대해, 후예1인 서쪽 프랑크 나라는 교황청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후예2인 유럽 중부의 나라는 로마제국 황실을 새로 차리기도 했다. 자신들의 원조라고 치켜 세우기는 하지만 그리스·로마라는 남유럽 보다 힘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아비뇽유수와 신성로마제국의 성립이다.

제우스상
아리스토텔레스 상

▶전시관 아키텍쳐= ‘그리스·로마 in 코리아’는 신화의 세계, 인간의 세상, 그림자의 제국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전시관을 꾸몄다.

1부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래된 신화를 다루었다. 여기에는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전시한다. 중요한 신들의 권능과 관장 영역, 관련된 일화를 전시품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한편으로 고대인들에게 이 같은 신화가 왜 필요했는지를 중심에 두었다. 또 그리스의 신화를 로마인들이 받아들이면서 세계에 대한 해석, 즉 세계관을 공유하게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 밖에도 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인체로 표현한 이유와 신화의 종교적 성격에 대해 알려주는 전시품들이 소개된다. 또한 여러 신들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LG디스플레이의 투명OLED로 구현하여 전시 효과를 높였다.

열정의 도슨트

2부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독자적인 발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초상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운 두 문화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그리스가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점령당하는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신화, 철학, 문학, 조형 예술은 로마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 조형 예술에 있어서 로마는 그리스 고전기의 조각 걸작들을 수집하고 대규모로 복제해 공공장소와 개인 저택에 세워두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같은 로마의 그리스 애호 덕분에 그리스의 문화 요소가 로마 제국 곳곳에 전파될 수 있었고, 그리스의 원본 걸작들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에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2부 공간은 초상 조각들이 주로 전시되었던 로마 시대 빌라의 모습으로 꾸몄다. 관람객들도 한가운데 차려진 연회에 초대받아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처럼 신과 죽음, 그리고 현실에 대해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참석자가 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 작품은 영웅이 아니다?= 3부 ‘그림자의 제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후관을 살펴본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고, 무덤과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들은 산 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뿐만 아니라 행인들이 죽은 이의 이름을 읽고 새겨진 형상을 보고 그를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덤의 위치를 길에서 가깝게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유골함과 석관에도 글과 이미지를 새겨 죽은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재미 있는 구석이 아주 많다. 그리스의 이집트 총독격인 클레오파트라의 할머니 여왕도 오고, 카이사르도 한국에 왔지만, 가장 멋지고 진귀한 당대 예술조각품은 로마 시민의 전신상 ‘토가를 입은 남성의 초상’이다. ‘빛의 벙커’ 같은 움직이는 걸작 ‘빌라 오브 미스테리’를 한 벽면에 채운 점도 흥미롭다.

한국에 와서 빛의 벙커 기법의 몰입형 예술로 거듭난 ‘빌라 오브 미스테리’

신과 영웅들의 모습을 조각해 거리 곳곳에 두는 정치적 예술 활용이 대중들에게 퍼지면서, 영웅들을 흉내내는 복색과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꾸미는 시민들의 조각상이 유행처럼 번졌고, 이 ‘토가..’ 작품이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합스부르크 보다 낫다= 그리스·로마가 왜 한 묶음인지, 전시 말미에 해답이 나온다. 중앙박물관의 보도자료와 기자들의 브리핑 보도가 드라마의 ‘스포’ 같을지 모르지만, 스포를 듣고 가도 재미있는 전시이다.

그리스·로마실 상설전시를 알리는, Wolfgang Angerholzer(주한오스트리아대사 )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Dr. Georg Plattner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로마컬렉션에페소스박물관 부장)

중앙박은 ‘로마는 그리스라는 자양분을 토대로 예술과 철학과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리스는 로마 덕분에 잊히지 않는 영원한 고대의 문화로 살아남게 되었다’하고 하는데, 이런 결론을 알고 가도 흥미롭다.

전시에 앞서 30분 가량을 투자해, 이집트 문명 개요, 그리스 정치제도,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 정벌, 펠레폰네소스전쟁(그리스 통일), 포에니전쟁(메소포타미아의 후예 한니발의 패퇴), 악티움 해전(로마 내전의 종식), 공화정이 왕정으로 반민주적 역주행하는 과정(나폴레옹이 답습해 셀프 대관하다 민중의 철퇴를 맞고, 베토벤의 미움을 받아 교향곡 ‘영웅’의 대상에서 제외됐음), 서로마의 어이없는 붕괴 등 기초 공부를 하고 간다면 한결 흥미롭겠다.

로마 문화의 가치에 대해, 음악평론가, 물리학자, 패션디자이너, 사제,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사 8인의 인터뷰를 모은 영상인 ‘나의 원픽’도 상영되는데, 문화예술적 감상법을 제시한다.

이 전시에는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쉬운 해설 정보와 촉각전시물, 점자안내판이 준비되어 있다.

합스부르크 걸작의 한국 전시(중박 특별전시 종료)를 얘기하다가,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던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측이 덤으로 준 선물이 바로 이번 그리스·로마 전시인데, 어쩌면 중세 예술 컬렉터 전시인 합스부르크 보다 더 두툼한 유럽 역사문화 이해의 장이 될 수도 있겠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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