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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기술과 K-팝의 미래[서병기의 콘텐츠 이야기]
엔지니어드아츠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 라스베이거스(미국)=문영규 기자

인공지능(AI)은 이제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인간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만든 인간을 빼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AMECA)’는 챗GPT를 학습해 인간과 능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AI기술은 문화 분야만 봐도 출판, 미술, 음악 등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제 AI는 10분 만에 노래 한 곡을 뚝딱 만들어낸다.

그런 가운데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지난 4월 27일 서울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23 MWM(Moving the World with Music) 콘퍼런스’ 주제로 ‘초거대 AI기술과 케이팝(K-POP)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잡은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이날 콘퍼런스 현장에서는 의미 있는 논의와 토론을 통해 다각적인 의견이 개진됨으로써 업계나 창작자, 소비자, 정부 등 모든 영역에 유익한 통찰을 제공했다.

▶AI와 K-팝, 업계들의 개발 사례와 방향=특히 학교와 정부, 전문가그룹뿐만 아니라 생성형 AI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 제작과 기술을 개발하는 음악 스타트업계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AI 오디오기업 수퍼톤의 이교구 대표는 ‘음악산업을 혁신하는 인공지능 음성기술’에서 AI 오디오기술이 음악산업을 혁신하는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하며 AI 오디오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콘텐츠 기획-제작-후반 작업-유통 배급’ 비즈모델 실사례를 보여준 것도 관련 기업인에게 큰 도움이 됐다. 가령,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걸 AI기술로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좋게 들리는지 사람들에게 판단할 수 있게 해줬다. 이 밖에도 목소리를 다양한 형태로 변환, 수정시키는 기술을 소개했다.

음악·오디오 분야 AI 스타트업 ㈜주스의 김준호 대표는 ‘AI 편곡기술의 현재와 미래’에서 원곡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재창조하는 편곡기술을 제시하면서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AI 편곡기술’에 대해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AI 콘텐츠 제작사 ㈜엔터아츠의 박찬재 대표는 ‘인공지능이 변화시킬 음악 콘텐츠 창작과 소비 방식’을 통해 뮤직비디오 등 영상과의 결합 방식을 조망하는 등 실사례를 통해 현재 AI가 음악 창작에 미치는 구체적인 내용과 영향에 대해 설명하며 음악 창작생태계와 콘텐츠시장의 미래를 전망했다. AI 음악 창작기업 포자랩스의 허원길 CEO는 ‘인공지능기술을 접목한 음악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통해 기존 음악시장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AI기술을 활용해 이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오디오 인식기술을 통한 음원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운드마우스코리아의 최보나 본부장은 ‘AI기술은 음원권리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AI기술을 통해 음원권리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폭넓게 설명했다.

주제발표 중 유원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실장은 ‘AI기술과 음악산업 적용 사례’를 통해 전반적인 AI의 개념과 음악산업의 융합 사례를 소개하면서 구현 목적에 따른 판단형 AI와 생성형 AI 적용 사례를 각각 살펴봄으로써 향후 융합 방향을 감 잡을 수 있게 한 것도 유익한 발표였다.

▶AI 음악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저작권과 표절 문제=벌써 AI 확산으로 인한 문제를 감독하고 규제할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한 현상이다. 아무리 ‘딥 러닝’이라고 해도 AI의 창작 자체가 방대한 기존 자료(데이터)의 패턴이나 통계적 분석을 사용한 결과물이기에 사용된 데이터를 둘러싼 권리 문제 등을 다양하게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AI 음악에 대한 대처는 유럽이 가장 빠르다. 지난 1956년부터 60년 넘게 한 회도 중단되지 않고 열린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는 2019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AI로 쓰인 곡이 출품됐고, 2020년에는 코로나로 오프라인 대회를 열기 어려워지자 AI로 만든 노래로 경연을 벌이는 유러비전 ‘AI 송’ 콘테스트를 연 적도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가 빅데이터 활용과 인공지능의 개발에 필수적이면서 데이터를 복제하게 되는 ‘텍스트와 데이터 마이닝(TDM·text and data mining)’을 비영리 연구 목적으로 허용하는 추세와 달리 한국의 저작권법에는 아직 TDM 관련 규정 자체가 없다.

한국은 현재 저작권법을 전면 개편하고 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생성형 AI기술의 변화속도에 비해 관련 법규의 업데이트가 더딘 편이다.

AI로 작곡, 편곡, 연주, 제작하는 등 음악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고, 음악산업의 새로운 소비 형태와 소비공간이 창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관련 법규 마련은 시급한 문제다.

AI가 작곡을 하는 등 음악 제작활동을 하는 자체를 차단하기는 어렵다. 자칫 음악시장 확장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놔두면 부정적인 상황도 이어질 수 있다. 유원영 실장은 “AI 음악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학습데이터를 사용하고, 음원 분리를 통한 일부 샘플 사용, 표절 문제 외에도 글로벌 거대 자본의 플랫폼, AI 모델(툴) 등의 종속화 우려와 함께 히트곡 예측과 창작자 입장의 생성 방향 제어 불가 등 전문 분야의 인공지능(AI)의 유효성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고 AI기술이 음악산업에 적용됐을 때의 부정적 요인을 예측했다.

‘2023 MWM 콘퍼런스’

▶벌써 혼란이 시작됐다=AI 작곡가 ‘이봄’은 6년간 30만여곡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저작권료가 발생한 곡에 대해서는 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음저협은 갑자기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이봄’이 인간이 아니라 광주과학기술원이 개발한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행 한국의 저작권법에는 인간(자연인)만이 저작권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AI 음악은 저작권료를 줄 수도 없고, 그 음악을 사용하는 측으로부터 사용료를 징수할 수도 없다. 지금은 AI 음악이 시장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하지만 AI 음악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방송음악시장부터 AI에 의해 아주 조금씩 잠식당하고 있다. 앞으로 AI 음악은 개발 주체들이 디지털 서비스와 소셜미디어, 숏폼 비디오 플랫폼, 모바일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활용 등에도 능해 각종 음월 차트 순위에 올리는 바이럴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는 외국과도 공조해 다양한 음악의 공존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해가야 한다.

AI 음악을 허용한다고 해서 창작자의 음악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법안을 만들 때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문화 양쪽 중 AI 음악 발전을 위해 초기에는 기술에 가점을 줬다면 이제는 정책적으로 문화도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안을 마련할 때, 지금 이 순간도 생성형 AI는 진화하는 중이라는 사실도 고려돼야 한다.

황선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사업2국장은 “AI 음악과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TDM 면책 규정이 논의되고 있는데 AI 음악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적법하게 기존 음악저작물을 사용할 방법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AI가 생성 전 학습 단계의 데이터를 활용하게 해주는 방법 등이다.

▶AI와 K-팝, 보완적 관계나 좋은 경쟁자 관계도 될 수 있다=김형석 프로듀서는 AI는 인간과 좋은 보완적 관계, 좋은 경쟁자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AI가 창작자 영역을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도,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현재로서는 독창적인 AI는 어려울 듯하다는 것이다. 미디(MIDI) 작업을 할 때 드럼을 치지 않고 할 수 있듯이 AI도 창작자에게 보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AI가 아이돌댄스의 몇 가지 예제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김형석 프로듀서는 “프로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에 1대 4로 졌다. 이세돌이 딱 한 번 이겼는데 지금까지 두던 방식이 아닌 엉뚱한 곳에 포석을 했을 때 AI는 쩔쩔매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루틴이 아니어서 AI에 혼란을 주게 돼 이세돌이 이겼다. 마찬가지로 케이팝도 그런 식으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프로듀서도 “AI 음악은 저작권, 표절 문제로 어느 정도 카오스 시기를 거쳐야 할 것 같다. 관련 법안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은 현재는 AI가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변형하지 말고, 저작권 권리가 없는 1만여개의 음원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만드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AI 음악, 표절에서 자유로워지려면=하지만 AI가 본격 창작에 나서면 저작권과 표절 판단 기준 등이 복잡하고 모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AI라고 해서 인간세계와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의 세계에서는 수용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AI 음악이 이것과 저것을 섞은 것이거나 너무 뻔하면 가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표절 혐의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인간의 창작물도 마찬가지다. 잘나가던 K-드라마가 최근 들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례가 자주 나오는 이유를 그런 맥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들을 틀에 넣고 장르적 문법에 의해 돌려버리는 작품들이다. 사람이든, AI든 이런 식으로 창작물을 만들면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대중예술은 상업적인 요인을 중시하면서도 작가 고유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AI 음악에도 그러한 기준은 적용된다.

AI 음악은 표절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미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힙합에서의 샘플링(Sampling) 기법이다. 동부힙합의 거장이었던 노토리어스 B.I.G.(비기)가 지난 1997년 3월 총격으로 피살되자 래퍼 겸 제작자인 퍼프 대디는 같은 해 비기의 미망인인 페이스 에번스와 함께 추모곡 ‘I’ll Be Missing You’를 발표해 빌보드 ‘핫 100’ 11주 연속 1위에 올려놨다.

하지만 이 노래는 퍼프 대디가 스팅이 과거 소속됐던 그룹 ‘폴리스’의 노래인 ‘Every Breath You Take’를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 만든 샘플링곡이다. 결국 ‘I’ll Be Missing You’의 어마어마한 저작권 수입은 모두 스팅이 가져가게 됐다.

하지만 샘플링의 저작권을 모두 원곡자가 가져가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샘플링은 창작행위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마돈나 등의 샘플링 사례는 법정에서도 창작행위로 인정받은 바 있다.

AI 음악도 샘플링 음악처럼 기존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표절의 기준이 둘 다 유사한 부분이 있다. 만약 퍼프 대디의 추모곡이 기존 곡을 샘플링하되, 또 다른 창작행위가 나와 기존 곡과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스팅에게 저작권을 모두 주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전통적 음악저작권과 AI 음악저작권 모두 보호해야=우리는 전통적 음악저작권과 AI가 만드는 음악에 대한 저작권, 두 개를 모두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상충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처럼 AI 음악은 인간이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결코 적지 않다. AI 음악은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늙지 않는 가수’ AI, ‘AI에게 묻는 진정성이란?’ 등의 논의와 함께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음악 가짓수가 많아지는 문제, 오리지널과 가짜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AI 가수를 통해 성적 대상화나 여성혐오적 콘텐츠가 나올 가능성은 없는지 등의 문제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최광호 사무총장은 “AI가 향후에 케이팝산업에 미칠 영향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산업 변화에 대해 케이팝산업계와 IT산업계는 정부 정책 수립에 있어 대립보다는 상생을 위한 논의의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 김창환 회장은 “2023 MWM 콘퍼런스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음악산업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얻은 것 같다. 나아가 AI 시대에도 음악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환원할 수 있도록 대중음악산업계와 팬덤이 끈끈하게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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