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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들, 암울한 미래를 이야기하다 [아트바젤2023]
특별섹션 언리미티드 12일 개막
기후변화·환경파괴 등 위기의 인류
아델 압데세메드 작 ‘Jam Proximus Ardet, la dermiere video’.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인 바젤의 특별섹션 언리미티드 들머리를 장식한 작업. [이한빛 기자]

[헤럴드경제(스위스 바젤)=이한빛 기자]조각배가 불에 탄다.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하는 배에는 한 명의 남자가 서있다. 곧 침몰할 듯 보이는데도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불에 타거나, 물에 빠지거나. 극과 극의 선택지 사이, 사실 무엇을 택해도 결과는 같다. (Jam Proximus Ardet, la dermiere video. 아델 압데세메드 작)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인 바젤 2023’이 스위스 바젤 메세 플라츠에서 15일(현지 시간)부터 18일까지 열린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퍼블릭 오픈에 앞서 12일에는 특별 섹션인 언리미티드가 VIP관객을 대상으로 먼저 개막했고, 13~14일 이틀 동안 본 행사인 아트페어도 프리뷰를 시작한다.

언리미티드 개막 시간인 오후 4시 메세 플라츠에는 입장하기 위한 관객 1000여명이 몰리며 입장에만 1시간 넘게 걸리는 등 코로나19 이후 완전체로 돌아온 아트바젤에 대한 미술계의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올해 키워드는 #기후변화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
문경원, 전준호 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 [이한빛 기자]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지난 2019년 언리미티드는 로니혼의 대형 조각 작품 ‘태양’을 입구 첫 작품으로 선택했다.

그때는 둥근 고리같은 태양 앞에서 자연의 절대적 아름다움과 엄숙함이 강조됐다면 4년이 지난 지금은 불타는 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언리미티드를 큐레이팅한 지오바니 카르민은 “세상이 꽤 자주 불타는 배와 같다는 그런 생각을 들게 하지 않나”라고 말한다. 불과 몇 년 사이 예술가들은 암울한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세계 미술 시장의 가늠자로 작동하는 아트페어에서.

서지 아투크웨이 클로티, Sea never dies, 2022 [이한빛 기자]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인간성의 상실 등의 키워드가 페어장을 점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보다 불가역의 시점을 넘어버린 현실에 대한 냉정한 미러링이 읽힌다.

가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서지 아투크웨이 클로티(Serge Attukwei Clottey)는 기름통으로 쓰이던 노란 플라스틱 병을 작은 네모조각으로 쪼개고 이를 철실로 이어붙여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 클림트의 금빛 드레스나 바티잔 스타일의 모자이크를 연상시킬정도로 아름답지만 작업은 폐 플라스틱 통으로 물을 구해와야했던 가나의 물부족, 이주문제와 지구 온난화를 지적한다.

일본 작가인 히로키 츠쿠다(Hiroki Tsukuda)는 ‘파리대왕’이라는 대형 설치물을 선보인다. 만화나 SF소설에서 착안한 파리 대왕은 기괴한 형태로 검은 태양을 등지고 서 있다. 문명이 야만으로 대체되는 세상을 작가는 윌리엄 골딩이 1954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차용해 시각화한다.

그런가하면 마쿠스 쉰왈드(Markus Schinwald)는 인간 전쟁의 폭력적 이미지를 AI(인공지능)나 AR(증강현실)의 영상 문법으로 읽어내고, 루비아나 히미드(Lubiana Himid)는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흑인 여성의 결혼에서 잡아낸다.

압데세메드의 ‘바다’에서 문경원·전준호의 ‘바다’로
인터뷰중인 문경원(사진 왼쪽)과 전준호 [이한빛 기자]

올해 언리미티드에 선보인 작업은 총 76개다. 망망대해에서 불타는 조각배가 그 시작이었다면 전시장 가장 안쪽엔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의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가 상영되고 있다.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한 인간의 삶을 향한 의지와 투쟁을 담은 작품으로, 지난해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영화배우 류준열의 연기에 더해 공간 전체를 감싼 LED조명이 작품을 몰입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관객 입장에서는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한 바다 이야기가 전시 끝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전준호 작가는 “영상 속 인물은 자신이 가상 세계에 산다는 걸 모른다. 고군분투하며 하루 하루 육지와 타인을 찾아 헤메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지워지고 다시 그 삶이 반복된다. 그런데 우리 삶도 이와 한편 닮아있다”라며 인간 존재와 사회 제도의 불안정함을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이 타고 있는 라이프보트도 생명을 구하는 역할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덫처럼 잡고 있는 장치다. 외부에 설치된 LED는 완벽한 그리드가 아닌 일부 조각이 빠진 채 설치됐다. 완벽하지 않은 불안한 인간을 상징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국가주의로 흐르는 신(新) 냉전 체제 등 우리 역사는 반복과 순환의 연속이다. 이같은 지점을 웰메이드 영상으로 풀어낸 문경원·전준호의 작업은 큐레이터와 미술관 디렉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프랑스 유명 큐레이터인 제롬 산즈(Jerome Sans)는 “현대미술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보니 영감이 떠오른다”며 전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문경원 작가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전과 완전히 다름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경원·전준호의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를 찾은 관람객들 [이한빛 기자]
[아우구스타스 세라피나의 ‘Ciurlionis Gym’. 리투아니아의 Ciurlionis 미술학교를 졸업하느 작가는 자신의 학업경험을 운동하는 체력단련장으로 치환했다. 퍼포머들은 그리스 조각상이 달린 운동기구로 신체를 단련한다. 이한빛 기자]
더글라스·크루거 등 거장 작품들도 ‘눈길’

동시대 작가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신선한 아이디어들 사이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업도 선보였다. 프란츠 웨스트가 지난 1998년 선보인 ‘100개 의자’, 스탠 더글라스의 가짜뉴스 작업 ‘이브닝’(1994),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우리의 지도자)’(1987/2020)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최근 글로벌 미술계에서 대형전시로 이목이 집중됀 안네 임호프, 귀세페 페논, 론 테라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도 근작과 신작으로 관객과 만났다.

아트바젤 페어와 전시 플랫폼 디렉터인 빈첸조 드 벨리스는 “올해 언리미티드는 그 어느 해보다 다층적이고 비할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시”라며 “기성작가와 신진작가의 작업의 조화로운 큐레이팅을 통해 작가들의 야심 넘치는 아이디어를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화 했다”고 말했다.

12일 언리미티드를 보기위해 몰려든 VIP들 [이한빛 기자]
언리미티드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 길게늘어섰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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