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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광고 가리려다 범죄까지 가렸다…편의점 '불투명 시트지' 뗀다[김용훈의 먹고사니즘]

편의점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지난 2월 8일 오후 10시 52분께,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후드를 쓴 권 모(32)씨는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한 편의점에서 손님인 척 들어가 점주(33)를 계산대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창고로 끌고 들어가 소지하고 있던 흉기인 과도로 찌르고 현금을 훔쳐 도주했다. 해당 점주는 어머니와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며 야간 시간대 업무를 맡아왔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편의점주들 사이에선 사건 발생시 피해자 발견이 늦어진 원인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현행 법에 따르면 편의점에 진열된 담배 광고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편의점 창문은 불투명 필름으로 붙여뒀는데, 이로 이해 피해자 발견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살인 사건 후 공포에 떠는 점주들

살인 사건 이후 편의점주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선경씨는 지난 2월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 소식을 듣고 “저희 아들이 만약에 야간에 섰을 때 혹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정말 살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 일이 아닌 것이죠. 특히 인천 지역 편의점들은 말 그대로 비상입니다. 한 인천지역 편의점주는 “새벽 1시간 넘어가면 손님이 뚝 끊기는데, 마스크를 쓰고 얼굴이 가려진 손님이 들어오면 불안하고 겁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보건복지부가 ‘담배 광고’를 단속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주장입니다.

15일 국회입법조사처와 복지부에 따르면 현행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령법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편의점 같은 소매인의 영업소 영업소 외부에 광고내용이 보이게 전시하거나 부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내부에 광고물을 부착하는 행위만 허용하면서, 각 편의점마다 출입문과 유리창에 불투명 시트지가 붙게 됐습니다.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적지 않은 처벌을 받게 됩니다. 단속으로 인한 처벌을 피하려면, 편의점주들 입장에선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문제는 이에 따라 ‘강력 범죄’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편의점 범죄는 2017년 1만780건에서 2021년 1만5488건으로 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정부 내에서도 불투명 시트지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요. 국토교통부 소관인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에 따르면 편의점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어요. 반면 복지부는 건강 우려로 담배 광고가 외부에 노출돼선 안된다고 맞섰습니다. 다만 국회입법조사처는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야 하는 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8일 보고서를 통해 “소매점 내부 광고는 허용하고 외부 노출만 금지한 현행 규제의 효과성 논란, 불투명 시트지 부착으로 인한 안전 사각지대 발생이라는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담배 광고 노출, 흡연율과 상관관계는?

만약 정말로 담배 광고가 외부에 노출되면 흡연율이 올라갈까요. 하지만 이는 각 연구조사나 통계 결과도 판이하게 엇갈리고 있어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명승권 대학원장이 20~30대 청년을 중심으로 2만5722명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자담배 광고에 노출된 이들이 전자담배 흡연자가 될 확률은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의 1.53배에 달했습니다. 소매점에서 전자담배 광고에 노출된 경우는 2.2배,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노출된 사람은 1.5배 흡연율이 높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불투명 시트지 부착 규정은 유효한 ‘규제’이겠죠.

하지만 통계는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질병관리청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청소년 흡연율은 4.4%였는데, 불투명 시트지가 부착되기 시작한 2021년 4.5%로 오히려 소폭 늘었다는 점에서 외부 노출 방지를 통한 정책 효과에 비해 불필요한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불투명 시트지로 내부를 가려도 LED 등과 형광등을 켜면 어차피 밖에서 훤히 광고가 보이기 때문에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부, 이번주 편의점 ‘불투명 시트지’ 뗀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 주 중에 편의점 불투명 시트지를 부착 의무를 폐지하는 규제개선 권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지난 9일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편의점 업계가 반투명 시트지를 편의점 유리 벽에서 떼는 대신 눈에 잘 띄는 1개 면에 금연 광고 포스터를 붙이는 방안 등을 논의했고, 이에 따라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이 합의를 담은 규제개선 권고안을 발표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다른 상품 광고 등을 유리 면에 추가로 붙이거나 내부 담배광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끄는 방법도 담배 내부 광고 노출을 줄일 대안으로 함께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실시된 담배 광고 규제 강화 법안 마련 국민 투표 개표결과 약 57%가 ‘찬성표’를 던졌다. [AFP]

전문가들은 흡연율을 줄이려면 담배 내부광고가 어떻게 외부로 보이지 않게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부광고를 과연 해도 되는지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통해 모든 담배광고·판촉·후원에 대한 포괄적인 금지조치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설명입니다. 우리나라도 WHO FCTC 협약 당사국입니다. 담배 광고에 대한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은 세계적으로도 활발합니다. 올해부턴 필립모리스 등 세계적인 담배회사 본사가 있는 스위스에서도 신문·인터넷·영화관 등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담배 광고 제한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담배 광고 규제 강화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붙였고, 그 결과 절반이 넘는 약 57%가 강화 법안에 찬성했기 때문입니다.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 수용자의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 주세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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