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도현정 기자]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문·이과 구분 없는 통합수능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하다. 문과생들은 이공계의 벽을 넘기 힘들고, 이과생들의 ‘문과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이과 수학까지 배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자료: 종로학원 분석 및 각 대학 입학처 공시

지난달 28일 각 대학이 공시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에 따르면 선택과목 필수 반영을 폐지한 대학은 2024학년도 입시보다 17개교 늘었다. 2024학년도 입시에서는 서강대 등 10곳이 선택과목 필수 반영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는 문과생들의 이공계 학과 지원에 걸림돌을 없앴다는 뜻이다.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에서는 수능 수학영역에서 미적분·기하, 탐구영역에서는 과학탐구를 필수로 반영해왔다. 이는 이과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과목들이다. 문과생들은 주로 수학영역에서 확률·통계를, 탐구영역에서는 사회탐구를 응시했다. 대학에서 이 같은 선택과목 필수반영을 폐지한다는 것은 문과생들이 미적분·기하나 과탐을 보지 않아도 이공계 학과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이과생들의 ‘문과침공’ 논란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형식적으로는 문과생들에게 벽이 없어진 것이지만 입시 전문 업체들의 해석은 다르다. 우선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최상위권 대학들의 경우 문과에서 이과로 지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서울대는 의대, 치대, 약대 등 자연계에서 수학영역은 미적분·기하, 탐구영역은 과학탐구를 필수 반영하는 선택과목으로 지정, 문과생들의 교차지원이 불가능하게 됐다. 연세대는 수학과 탐구영역에서 필수 반영 과목을 지정하지 않았지만, 가산점으로 교차지원에 벽을 세워뒀다. 문과에서는 사회탐구, 이과에서는 과학탐구에 3% 가량의 가산점을 부여, 문과가 이공계 학과에 지원하거나 이과 수험생이 문과로 지원하는 것 모두 불리하게 해놨다. 이 같은 가산점은 2024학년도 대입에서는 없는 것이었다. 고려대는 자연계열 학과가 수학영역에서 필수로 반영하는 선택과목을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과학탐구는 필수 반영으로 지정해놨다. 문과생들의 지원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학 선택과목간 점수차를 감안하면 문이 열려있는 다른 주요대학들도 문과생이 공략하기란 어렵다. 지난 두 번의 통합수능에서 확률·통계 표준점수는 미적분·기하보다 3점 가량 뒤쳐졌다. 수학에서 문과생들이 확연히 불리하다는 것이다. 유웨이중앙교육은 대학에서 반영하는 조정점수제까지 감안하면 미적분·기하의 표준점수가 높게 산출되기 때문에, 확률·통계를 선택한 인문계생들에게는 여전히 불리한 구조라 분석했다. 동국대 등 미적분·기하 응시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확률·통계를 선택한 문과생들이 이공계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현실이 제도의 취지를 못 따라가면서, 오히려 문과생들의 부담이 더 커지는 양상도 보인다. 종로학원은 상위권 문과생들은 이과생들의 문과침공에 대비해 수학에서 미적분·기하를 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공부에 부담이 되더라도 ‘이과 수학’을 준비해 향후 선택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통합수능의 본래 취지는 문·이과의 구분을 없애고 수험생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하게 해 부담을 줄인 것”이라며 “정작 2년간 시험을 치러보니 선택과목간 점수차 등으로 문과생들의 불이익이 생겼고, 수험생들의 공부 부담도 더 커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