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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판 떼어내고 직접 불 끄고...”화마에도 ‘700년 유산’ 경포대 사수
강릉시청 담당 공무원 인터뷰
직원 8명이 조 짜서 동분서주
방해정 등 일부 소실 안타까워

“오전 10시쯤 도착하니 상영정(觴詠亭)이 타고 있었어요. 방해정(放海亭) 주변도 불타고 있었죠. 방해정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에 소방 호스 끌어와서 불을 껐습니다.”

임승빈 강릉시청 문화유산과 문화유산정책팀장은 12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산불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임 팀장은 지난 11일 강원 산불이 발생하자 직원 8명과 함께 조를 짜서 문화유산을 방문했다. 화재 위험이 있는 곳은 현판(건물이름을 새겨 넣은 판)이나 현액(그림이나 글자를 판에 새기거나 액자에 넣어 문 위나 벽에 달아 놓은 것)을 챙겼다. 불이 난 곳은 직접 소방 호스로 불을 껐다.

축구장 530개 면적(산림 379㏊)을 태운 강릉 산불 속에서도 강릉 문화재는 화마를 피했다. 보물을 지키려는 강릉시청, 문화재청 공무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릉시 직원들은 처음 맞닥뜨리는 긴급 상황에서도 ‘문화재 사수’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현장에서 임 팀장은 직원 2명과 함께 방해정 지붕에 붙은 불을 껐다. 임 팀장은 “방해정은 비지정 문화재라 시 직원이 나서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건물이 타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했다”며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현판은 다시 못 만드니까 5개를 급하게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

불을 끄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임 팀장은 “워낙 바람이 강해서 불이 건물 위로 날아들었다. 바로 옆 나무들도 타고 있었고 뒤에서 불길이 날아들고 있었다”며 “불을 하나 끄면 다시 불이 달라붙어서 중간 중간 계속 진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강릉 방해정 일대는 최대 순간풍속 초속 30m의 태풍급 바람을 타고 산불이 번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씨처럼 강릉시 공무원들은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기를 물리치고 문화재를 보존했다. 1326년에 건립돼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46호 경포대의 현판을 보존한 직원도 있었다. 방영균 강릉시청 문화유산과 유형문화유산팀 계장은 경포대 현판 7점을 떼내 오죽헌시립박물관 수장고로 옮긴 인물 중 하나다. 전날 오전 한때 경포대 근처까지 강원 산불이 번졌지만 문화재청과 강원도·강릉시 공무원 등이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선 덕에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직원들은 나무로 발판을 만들어 급하게 현판을 떼야 했다. 방 계장은 “원래 현판이나 현액을 보관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불이 워낙 심해 현판이라도 보존하자 싶어서 현판 1개와 현액 6개를 챙겼다”며 “현액에 붙은 고정장치를 급하게 잡아뜯어야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문화재를 다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도 있다. 임 팀장은 “우리가 노력을 했지만 불에서 구하지 못한 문화재 상영정도 있다”며 “이런 일이 흔한 일이 아니다. 화재가 발생한 적은 있어도 문화재가 위험에 처할뻔한 건 흔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경포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관광객이 찾던 상영정은 이번 강릉 화재로 전소됐다.

강릉=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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