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금리 홍보물. [연합]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금리를 잇달아 내리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 3.50%보다 낮은 금리의 가계대출상품이 등장했다. 예금금리는 아예 3% 밑으로 내려간 상품도 눈에 띈다.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을 택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사실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날(5일) 기준 전세자금대출금리는 3.45~5.95%로, 하단이 한국은행 현 기준금리(3.5%)보다 0.05%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형 주택담보대출금리도 하단이 3.69%로, 기준금리와 0.19%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대출금리가 이렇게 내리다 보니 예금금리는 더 주저앉았다. 예금상품 가운데 기준금리를 웃도는 상품은 전체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금리를 공시한 16개 은행의 41개 상품 가운데 1년 만기 기준으로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예금상품은 27개에 달한다. 공시된 전체 상품의 66% 수준이다.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기본금리는 연 2.6%,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은 연 3.2%다.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의 기본금리는 연 0.95%, 최고 우대금리(고객 적용금리)는 연 3.5%로 기준금리와 같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 금리에 가까운 특판상품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금리 하락세는 놀라울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서울 한 은행 대출창구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

금융상품의 금리 하락세는 올해 안에 미국 중앙은행과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가 반영되면서 시장금리가 하향된 데에 따라 나타났다. 게다가 당국이 차주들의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해 금리경쟁 자제를 권고한 영향도 작용했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중은행들을 돌며 상생금융을 독려하는 동안 은행들은 경쟁하듯 가산금리를 낮춰 대출금리를 끌어내렸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사실상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긴축을 택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5일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했을 때는 물가와 경기를 고려해 필요에 의해 통화정책을 쓰는 것인데 채무자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압력을 가해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며 “통화정책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년 만에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조윤제 금통위원은 금리 인상 소수 의견을 냈다. 조 위원은 그동안 금리를 가파르게 올렸던 것에 비해 시장이 긴축적이지 않은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을 제시했다. 조 위원은 “금융시장이 한은의 정책 의도보다 완화적 기대를 형성해 실제 이것이 현재 금융시장 상황으로 반영돼 있는 점”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위원이 소수 의견을 낸 것은 2020년 4월 금통위원으로 취임한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이다.

실제 채권시장은 이미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채 3년물은 오후 2시50분 현재 3.20%로 거래되며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다. 국채 3년물은 지난달 13일 이후 19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시장에서 금리를 더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윤지호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한은 기준금리가 이미 충분히 긴축적 영역에 있다”며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