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데스크 칼럼] ‘합의’와 ‘승소’

사회부를 떠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다시 ‘법률용어사전’을 펼쳐봤다. ‘합의’와 ‘승소’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찾아보니 민사소송에서 합의는 통상 민법상 화해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다. 법원이 ‘승패’를 가리기 전 서로 소(訴)를 취하, 재판이 종결되는 것이 합의라 할 수 있다. 반면 승소의 뜻은 명확했다. 소송에서 이겨, 당사자 중 한쪽이 법원으로부터 유리한 판결을 받는 것이다.

두 단어의 뜻을 찾아봤던 이유는 얼마 전 한 기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에 합의금을 지급하면서 양측 간 법적 분쟁이 종결됐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신동주 회장은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신동빈 롯데 회장의 형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신동주 회장이 운영하는 SDJ는 올해 2월 14일 일본 롯데홀딩스 자회사 롯데서비스에 6000만엔(약 5억8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화해 합의를 했다. 해당 합의는 롯데서비스가 2018년 8월 9일 신동주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다.

해당 소송의 1심 결과는 1년 전쯤 나왔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0일 신동주 회장은 1심에서 패소했다. 일본 도쿄지법은 신동주 회장이 롯데서비스 대표 재직 당시 추진한 이른바 ‘풀리카’ 사업과 관련해 “이사로서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신동주 회장에게 4억8000여만엔(약 47억원)을 롯데서비스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1~2014년 시행된 풀리카 사업은 소매점에서 상품 진열 상황을 촬영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업이다. 당시 이사진 등 일본 롯데 내부에서는 무단촬영에 따른 위험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롯데서비스 대표이자 유일한 임원이었던 신동주 회장은 사업을 강행했다.

1심 판결문을 보면 신동주 회장은 “점포 조사를 할 때 잡히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사업의 위법성을 의식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신동주 회장은 롯데서비스와 화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SDJ 측은 이번 ‘합의’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실질적 승소’라는 표현까지 썼다. 전술(前述)했지만, 합의와 승소는 의미가 다르다. 한 재계 관계자도 “신동주 회장이 회사에 합의금을 지급했다는 것은 행위의 부당성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합의 관련 보도를 보면 ‘신동주 회장이 화해금이라면 최근 어려워진 롯데의 그룹 자금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합의를 수용했다’고 SDJ 관계자가 밝혔다고 한다.

실제 롯데는 지난해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758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을 정도다. 롯데는 2010년대 이후 수십 차례 진행된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하다, 최근 들어 그 성장세가 주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일각에서는 신동주 회장이 주도한 이른바 ‘왕자의 난’ 탓에 발목이 잡혀 인수합병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을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SDJ 관계자의 말대로 신동주 회장이 정말 롯데를 생각한다면, ‘과거에 대한 유감’을 언급해도 부족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장형(長兄)으로서 아우르는 표현이 아쉽다.

신상윤 소비자경제부장

ke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