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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은밀한 배설공간’이 분수대 됐다…도쿄 도심속 백자기 정체는? [한지숙의 스폿잇]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최신작
후지모토 소우의 ‘우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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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일본 도쿄 니시산도 쇼핑가에 들어선 공중화장실 '우츠와'. [후지모토 소우 인스타그램]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유려한 순백의 도자기로 만든 듯한 거대한 그릇이 도심 한 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일렁이는 물결 속에 마치 하얀 종이배 하나가 도시를 떠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 그릇의 유선형의 전면부 뒤로 문 두 개가 보인다. 한 문은 여성용, 한 문은 남성용이다. 이 곳은 바로 화장실이다.

일본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Sou Fujimoto)가 설계한 공중 화장실 ‘우츠와(うつわ·그룻, 영문명 water vessel·수상선박)’가 도쿄 니시산도 쇼핑가에 새로이 생겼다.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시부야구와 함께 진행한 도쿄 차세대 화장실 프로젝트 ‘도쿄 화장실’의 최신작이 그 베일을 벗은 것이다.

일본 도쿄 니시산도 쇼핑가에 들어선 공중화장실 '우츠와' 모습. [디자인붐 유튜브채널]
일본 도쿄 니시산도 쇼핑가에 들어선 공중화장실 '우츠와' 모습. [디자인붐 유튜브채널]

건축가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등에 올라온 영상과 사진을 따라가 보자.

먼저 전경을 보면 고층 빌딩들과 전통 가옥을 배경으로 화장실 건물이 전체 그림과 멋들어지게 잘 어우러진다. 외려 순백색이 회색 빛 도시에 상큼한 자극을 주며 이 구역의 ‘주인공은 나야’라고 외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개방된 전면부 오목한 곳에는 수도꼭지들이 달려있다. 이 부분은 거대한 세면대다. 세면대 한편의 윗 부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흰색 덩어리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어린 아이도 쉽게 수도를 이용할 수 있게 수도꼭지의 높낮이가 다르게 배치돼 있다. [송영대 트위터]

특이한 점은 건물 안팎 양 편에서 세면대를 쓸 수 있도록 공간이 개방돼 있다는 점이다. 수도꼭지는 모두 다섯개로, 위치한 구역과 높이를 다르게 해 리듬감있게 배열돼 있다. 수도를 틀면 오목 각도를 따라 물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배수구는 정 가운데 가장 낮은 부분에 하나만 설치돼 있다. 이 배수구가 자칫 막히면 수돗물이 건물 안팎으로 넘치겠다는 노파심이 든다.

어쨌든 이 세면대는 후지모토가 설계 때 가장 힘을 준 부분이다. 후지모토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우츠와’ 소개글에서 “공중화장실은 도시의 수원(水源)이자, 도시 생활 속 분수대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화장실 세면대를 화장실 이용자 뿐 아니라 이 곳을 지나는 시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만든 이유다.

공중화장실 세면대가 화장실 이용자가 아니라도 건물 밖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공중화장실은 도시의 수원(水源)이자, 도시 생활 속 분수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송영대 트위터]

수도꼭지의 높낮이를 달리 배치한 건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휠체어를 탄 사람도 쉽고 자유롭게 수도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세면대에 모인 시민들은 손을 씻고, 물을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등 도심 속 분수대를 공유하게 된다.

후지모토는 “사람들이 수도 주변으로 모이는 장소로서, 공공 공간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공중화장실 '우츠와'의 주 출입구에서 내부에 들어선 모습. [후지모토 소우 인스타그램, 송영대 트위터]

건물 양 옆에는 출입구가 나 있다. 문은 자동 개폐식이다. 출입구 옆에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버튼이 달려있다. 문에는 남녀 화장실, 장애인 화장실, 장루·요루 환자 전용 화장실(초고령 사회 일본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영유아 기저귀 갈이대가 있음을 뜻하는 픽토그램이 간결하게 붙어있다. 건물 전체 마감은 둥그렇게 처리돼 있다(이는 서울 여의도 더 현대의 1층 휴게공간의 질감과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화장실 칸은 한 눈에도 간결하면서 실용적이며 유니버셜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이 변기에 앉았다 일어날 때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지지대까지 그냥 스테인리스로 두지 않고 흰색의 페인트로 처리했다. 화장실 칸 내부를 어느 한 부분도 튀지 않고 조화롭게 한 설계자의 디테일이 엿보인다.

공중화장실 '우츠와'를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우츠와'는 그릇이란 뜻이다. [도쿄화장실 사이트]

역시, 멋지다. ‘전자식 비데’를 발명한, 화장실에 진심인 나라 일본의 공중화장실 답다. 다만 장기간 세월이 흘러도 도시 생활에서 필연적인 매연과 오물의 때를 입지 않고 본래의 순백색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은 남는다.

X세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1971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1994년 도쿄대학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신진 건축가다. 2000년 후지모토 소우 건축 설계 사무소를 설립했으며, 대학에서 강의도 뛴다.

주요 작품으로 ‘이즈의 요양 시설, 2003(JIA 신인상, AR어워드 입상)’, ‘안나카 아트 포럼 국제 설계 공모전, 2003(최우수상)’, ‘T 하우스, 2005(도쿄 건축사회 주택 건축상 금상, AR어워드 입상)’, ‘차세대 목조 방갈로, 2005(마모토 아트폴리스 설계 공모전 최우수상)’, ‘정서 장애 아동을 위한 단기 치료 시설, 2006(JIA 일본 건축 대상, AR어워드 대상)’, ‘파이널 우든 하우스, 2008(세계 건축 페스티벌 개인 주택 부문 최우수상, 월 페이퍼 어워드 2009)’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 ‘원초적인 미래의 건축’(2008년, INAX 출판), ‘2G Sou Fujimoto-모노그래프’(2009년, GG Editorial Gustavo Gili, SL), ‘얼터너티브 모던-건축의 자유를 열다’(공저, 2005년, TN브로브), ‘졸업 설계를 하며 생각했던 것, 그리고 지금’(공저, 2005년, 창국사), ‘8명은 이렇게 건축가가 되었다’(공저, 2007년, 학예출판사) 등이 있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 반 시게루(Shigeru Ban)가 설계한 투명화장실. [도쿄화장실 사이트]
'도쿄 화장실(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는

비영리단체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시부야구와 함께 2020년에 시작한 공중화장실 프로젝트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극진한 대접)’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이토 도요, 쿠마 켄고 등 유명 건축가 16명이 참여해 도쿄 번화가 시부야, 하루주쿠 등 일대에 총 17개 화장실을 설치하는 내용이다.

프로젝트 공식 사이트에는 각 건축가의 개성을 발산하는 화장실이 소개돼 있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 반 시게루(Shigeru Ban)가 설계한 투명화장실 사용 모습. 문을 닫으면 전기 흐름이 차단돼 불투명하게 바뀌는 스마트 글라스를 적용했다. [기가제트 유튜브채널]

도쿄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과 하루노 오가와 커뮤니티 공원에 1곳씩 설치된 투명 화장실은 2021년에 공개된 뒤 명소가 됐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 반 시게루(Shigeru Ban)가 설계한 이 화장실은 건물 전체가 색깔을 입힌 투명 유리벽으로 돼 있다. 바깥 사방에서 화장실 칸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용자가 화장실 칸 안에서 문을 잠그면 유리는 불투명으로 바뀌어 외부 시선을 차단한다.

불투명한 색 만으로 내부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노크할 필요가 없어 장점이다. 또한 밤에는 투명 화장실이 등불처럼 공원을 밝혀준다. 이처럼 전기 흐름으로 투명도를 조절하는 스마트 글라스 화장실은 이미 오래전 서울 광진구 W호텔 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방이 뻥 뚫린 야외 공원 공중화장실에 투명 화장실이 설치되자 전세계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다.

구마 겐고(Kengo Kuma)의 ‘오솔길 화장실’ 출입구 모습. 계단 위참 왼쪽에 보이는 작은 문이 화장실 칸 문이다. ([도쿄화장실 사이트]
화장실 칸 내벽에도 나무 절단면을 붙여 놓았다. [도쿄화장실 사이트]

구마 겐고(Kengo Kuma)는 나베시마 소토 공원에 ‘오솔길 화장실’(A Walk in the Woods)을 설치했다. 평소 목재 등 친환경 소재를 즐겨 쓰는 것으로 유명한 이 건축가는 삼나무 판자를 화장실 외벽에 둘렀다. 화장실 칸에도 메타세콰이어 나무 절단면을 벽에 붙여 내부를 꾸몄다. 세면대 상판도 나무 무늬다. 야간에는 화장실 가는 길 바닥 조명이 나무 판을 은은하게 비춘다. 화장실 보단 해우소(解憂所)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산업 디자이너 타무라 나오(Nao Tamura)는 히가시 산초메의 도로변 작은 삼각형 부지에 강렬한 붉은 색의 건물을 들여놓아 회색 일색이던 이 일대의 분위기를 확 살려놓았다. 그녀는 남성, 여성, 휠체어 사용자 등 화장실 칸 3개를 나눈 뒤 일본의 전통 선물 포장인 오리가타(Origata)에 착안해 외부를 강철판을 붙여 종이접기한 듯 모양을 냈다.

도로변 작은 삼각형 부지에 강렬한 붉은 색 공중화장실 덕에 이 일대 분위기를 확 살아났다.[도쿄화장실 사이트]
삼각형 부지에 공중화장실을 건설하는 모습. [도쿄화장실 사이트]

나나고도리 공원에는 거대한 흰색의 반구체 건물이 들어섰다. 광고회사 TBWA/하쿠호도의 최고크리에이트책임자(CCO) 사토 카즈(Kazoo Sato)는 비 접촉(Contactless)식 개념을 내세웠다. 유럽과 미국 내에서 화장실 사용자 60%는 변기 레버를 발로 내리고, 50%는 화장실 문 손잡이를 화장지로 감싸서 만지고, 40%는 화장실 문을 엉덩이로 닫고, 30%는 가능한 한 손을 대지 않으려고 팔꿈치를 쓴다는 연구 조사 결과를 참고했다고 한다.

이 화장실에선 손을 대지 않고 ‘안녕 화장실’(Hi Toilet)이라고 말하면 문이 열린다. 음성명령으로 음악을 틀고, 변기 물을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거나 잠글 수 있다.

반구체 모습의 이 공중화장실은 음성인식 기술을 채택해 음성명령으로 문을 열고, 변기 물을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거나 잠글 수 있다. [도쿄화장실 사이트]
‘안녕 화장실’(Hi Toilet)이라고 말하면 화장실 문이 열린다. [도쿄화장실 사이트]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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