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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조 반도체 보조금 신청 개시…삼성, 영업 기밀까지 달라는 미국 지원 받을까 [비즈360]
31일(현지시간) 첨단 공장 보조금 신청 시작
지난 8월 삼성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부지 모습.[테일러시 정부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약 50조원에 달하는 미국의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기한이 시작된 가운데,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를 비롯한 글로벌 첨단 반도체 기업들의 셈법이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이 수율 등 비용 관련 민감한 정보까지 요청하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 전반의 우려로 급격히 번지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구 수위를 낮추기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3월 31일(현지시간)부터, 나머지 반도체 공장과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에 대해서는 6월 26일부터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

이에 대해 내년 하반기 첨단 반도체 공정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면밀히 상황을 검토해서 대응 방향을 수립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삼성전자는 20년간 테일러 신공장 9곳에 1676억달러(약 227조원)를, 오스틴 신공장 2곳에 245억달러(약 33조2000억원)를 각각 투자한다는 뜻을 나타낸 바 있다. 관련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의 요구 수위가 높아지면서 투자 검토에 한층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이 대외적으로 제기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패키징 공장 건설과 관련해 주별 검토를 마치고, 건설 투자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보조금 신청 여부에 대한 고민 역시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 공장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부지 선정을 한 것은 아닌 데다, 패키징(후공정) 공장 건립과 관련된 신청 기간은 오는 6월 26일부터여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신청 상황을 지켜보며 전략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를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들만 고심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도 보조금 지급 조건이 과하다는 우려를 최근 강하게 제기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30일(현지시간) 대만반도체산업협회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기자들에게 미 반도체법과 관련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조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아직 그들(미국 정부)과 논의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조건들을 조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계속 미국 정부와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조건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보조금 지급에 붙은 특정 제한이 미국의 잠재적 동맹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TSMC는 당초 2024년에 5나노 라인으로 가동하려던 공장을 4나노 공정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여기에 투자액을 기존 3배 수준인 400억 달러(약 53조 원)로 늘려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애리조나 2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보조금 신청에 당장 어느 기업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문제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과 관련된 저항이 파운드리나 패키징 등 일부 제조 기반 기업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백악관에서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로이터]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TSMC 애리주나 공장 장비반입식에서 TSMC 경영진과 고객사 경영진이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TSMC 웹페이지 캡처]

지난 27일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보조금 신청 절차의 세부 지침에 따르면 기업들은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의 비율) 등을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예상 현금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제출할 때도 산출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을 내야 한다. 사실상 기업의 영업기밀을 공개해야 보조금 신청이 가능하다. 미국이 이 데이터를 요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업이 예상 금액을 초과하여 얻은 초과 이익을 몰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달 미국이 기업 초과이익 일부를 상무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부 지원을 내건 데 이어 생산량·수율 등 기밀정보까지 요구하며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한 수율 등 비용 정보는 시스템 반도체 칩 설계를 의뢰한 팹리스(설계전문)의 수익성 산출과 협상력 확대의 관점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정보다. 당장 삼성이나 TSMC 뿐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칩 기업인 퀄컴, 엔비디아, AMD 등의 정책에 대한 반발 역시 가능하다는 평가다. D램·낸드 플래시 관련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도 칩의 효율적인 생산 방식 노하우를 공개하게 된다.

한국 정부도 이같은 우려를 알고 미국측에 전달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과도한 수준의 정보제공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있다”며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호적인 고려를 요청했다.

보조금 신청에 지속적인 협상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와도 논의를 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협의를 하면서 답을 찾는 방법이 현재로선 최선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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