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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노동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與 ‘조직 신설만’ 野 ‘문제 제기만’..입법조치 뒷짐[여의도 정책通]
정부·여당, ‘노동 공급’ 초점 이민청 신설
민주당 “노동 공급보다 합당한 처우 시급”
여야 정무적 판단에, 차별금지법 ‘거리 두기’
국회 계류 중인 제정안 4건, 미상정만 3건
국제사회 권고에도 임기만료 폐기 반복
19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이주 노동자들의 “차별 철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서 사망 사고와 인권 유린이 끊이지 않으면서다.

정부·여당은 정부조직을 개편해 이민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이주 노동자의 인권 향상보다는 ‘노동력 공급’ 관점에서 이민 정책을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과반의석을 보유한 야당에서는 이주 노동자 인권에 대해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만,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 조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 이주 노동자들이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21대 국회에서도 진전이 없다. 국내 불법체류자만 4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차별금지법의 공론화 과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매년 3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이다.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인종차별 철폐 시위를 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69명이 희생된 날을 기리는 의미로, 국제연합(UN)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정했다.

지난 19일 '세계 인종차별철쳬의 날'을 이틀 앞두고 이주노동자와 시민 200여 명은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기념대외를 열고, "이주민의 평등·자유·안전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는 인종, 성별, 장애, 나이 등의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 등의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차별금지법 제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이 가운데 평등에 관한 법률안 2건(이상민·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각각 대표발의)과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1건(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6월 29일 발의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만이 같은 해 9월 상정됐지만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국제 사회는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UN인권이사회 10개 국가는 이미 지난 2012년 우리나라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정부와 국회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는 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2007년 정부가 제출한 차별금지법안을 시작으로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총 5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출입국·이민 정책과 관련한 협력체계를 갖추기 위한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유럽 출장을 가고 있다.[연합]

정치권에서는 이주 노동자 인권 문제를 포함해 포괄적인 차별 금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신중한 입장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층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의 경우 역차별과 포퓰리즘 프레임으로 차별금지법을 비판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입장을 외면할 수 있다. 민주당은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인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 입법 방침을 정하는 분위기다.

법사위 관계자는 “가장 최근이라면 지난해 12월 법사위에서 차별금지법 상정이 시도됐지만 정부여당의 반대로 간단히 논의만 하고 상정되지 못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3건을 발의했지만 민주당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사실상 상임위에 떠넘겨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이주 노동자와 관련해 이민청 신설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법무부 핵심 정책 과제 중 하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5월 17일 취임사에서부터 이민청 신설을 법무부의 역점 사업으로 꼽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이민청 설립을 준비하기 위한 추진단도 6개월간 한시 조직(1회에 한해 6개월 연장 가능)으로 출범했다.

법무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적정 수준으로 유연하게 유입시킬 수 있는 '취업비자 총량제'도 검토해 하반기 시행할 계획이다. 한 장관은 상반기 중 이민청 설립에 관한 구체적 내용과 이민정책 방향을 발표할 방침이다.

검찰청과 같이 법무부 외청으로 조직되는 이민청의 신설은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미 이명수·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 S6에서 열린 미 SVB 사태 대응 벤처·스타트업 간담회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

민주당도 이민청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이민청 신설을 내세운 바 있다. 다만 향후 이민청이 신설될 경우 정부·여당과 민주당 사이에 우선적으로 추진할 정책 과제를 놓고 입장차를 보인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는 인구 감소로 인해 외국 인력 공급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은 당장 시급한 이민청의 정책과제로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꼽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이민청 신설과 관련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당한 처우 보장이 시급하다”며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적 개선책을 수립하는 것을 이민정책의 주요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청의 주된 설립 취지인 ‘인구 문제 해결’보다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다만 민주당은 내부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을 차별금지법과 연결하는 해석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주 노동자 인권과 관련된 제도 개선을 위해 당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는 셈이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 대표의 발언을)차별금지법과 연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라며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는 단계고 (이 대표의 발언은)현실을 직시하자는 정도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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