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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버른 문화·예술·축제의 중심 V미술관·F광장 [함영훈의 멋·맛·쉼]
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여행②
멜버른 페더레이션광장 밤 공연
국립 빅토리아 박물관(NGV). 초가을을 맞아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국립 빅토리아 미술관 나라별 주제관에서 한국 당의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호주학생

[헤럴드경제, 멜버른=함영훈 기자] 무료라기에 별로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가볼까 말까 하다가 별 기대감 없이 방문한 곳에서, 깔끔한 감정 정화를 얻으면 그 감동은 배가된다. 장롱 속에 던져놓은 철지난 옷을 다시 꺼내 입다가 주머니 안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5만원짜리 서너장이 손에 닿을 때의 희열이랄까.

1861년에 설립된 국립 빅토리아 갤러리(NGV)가 그런 곳이었다. 한강 처럼 멜버른 시티 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야라강 남쪽, 서울로 치면 신사동쯤 되는 곳에, 호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방문객이 가장 많은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지(OZ)나라투어 다니엘 서 가이드가 일정표에 없던 NGV에 차를 세우더니 “한번 가보자”고 해서 내렸더니, 2월말 초가을비까지 낙엽 위로 내린다.

멜버른 국립미술관의 설치미술. 마이크가 여럿 모이니, 군중의 아우성 같다.

▶현대작가, ‘무브먼트의 자유’= 감상할 거리의 90%인 상설전시는 무료이고, 특별 전시관만 유료이다. 트램을 타고 세인트 킬다로드에서 하차하면 갤러리 입구이다. 알고보니, 피카소와 렘브란트, 모네, 한국의 전통복식, 선비의 학습도구 등 7만여점의 소장품을 가진 곳이었다.

입구의 물유리벽(Waterwall) 너머로 흐릿하게 금빛 여신이 보이는데 입장 개시 때를 기다리는 동안 궁금증만 커간다. 워터월의 물은 NGV 건물을 둘러싼 해자로 흐른다. 미학의 중심지에 군사적 시설인 해자를 둔 것은 참으로 발칙한 배치인데, 청량감, 휴식터 같은 느낌을 주면서, 예상을 뒤엎고 미술관과 참 잘 어울린다.

멜버른 국립 미술관의 금빛 비너스상.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긴 것은 금빛 여신 비너스였다. 황금빛이라 루브르의 것보다 더 수려해 보인다. 좋은 것을 더욱 좋게...시크한 논객은 “너무 화장이 짙네”라고 촌평하지만, ‘여신 비너스라면 원래 이 정도는 표현해 줬어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현대미술전시관에선 의자 등 생활도구, 조명, 페인팅, 떼었다 붙이는 조각기법, 비디오 등을 적절히 활용해 ‘무브먼트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적혀있다. 비디오에선 의자가 다채롭게 변화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디스플레이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가진 작가들이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 기회를 준다.

나도 디지털 화가. 멜버른 국립미술관의 자화상 그리기 체험

▶못생긴 얼굴 잘 생기게 그리는 체험= ‘Time’이라는 전시관은 시간이라는 핵심 변수 위에서, 고동, 타격, 빛쏘임, 단일 사물의 군집화 등 자극과 변수들이 작용해, 하나의 존재를 다채롭게 변형시키는, 다양한 예술현상을 보여준다. 마이크를 수백개를 모아놓으니 혁명전야 군중의 아우성 같다.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할아버지의 시계’는 셀룰로이드 판 뒤편에 할아버지가 60초마다 흐릿하게 나타나 분침을 선명하게 다시그린다.

하나의 사물을 프린터 같은 기기에 집어넣으면 다채로운 속살까지 드러나는 아트스캐너도 호주예술인들의 창의성,첨단기술과의 접목 의지를 엿보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미술사는 사물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도록 하려는 노력의 역사였다.

사물의 내면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아트 스캐너

‘한국의 아재’ 같은 느낌의 남성작가가 마릴린몬로 의상으로 등장해 바람에 휘날리는 치마폭을 다양한 포즈로 잡아 보려는 동영상 퍼포먼스를 보면서, “주책이지만, 감행하는 바람에 다른 감흥을 주기도 하는 구나”라고 좋게 평해준다. 제트스트림은 주제 부분이 아주 작고 배경 되는 사물은 매우 크다. 화폭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제트기 흰 자국이 누가 보아도 주인공임을 알게하는 독특한 재주를 부린다.

관람객 참여형 체험도 있는데, 내 사진을 찍고 그 위해 디지털 크레파스로 내 얼굴을 그려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다 그리고 나면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게시하고 휴대폰에 저장토록 해준다. 잘 생긴 사람은 못생기게 그려지고, 못생긴 사람은 잘 생기게 그려지는게 일반적인데, 드로잉이 가진 참으로 기막힌 재주다. 한국인 일행은 두 여인을 제외하곤 모두 만족해 했다.

나라별 주제관에서 한 서양의 20대여성 관람객은 한국의 전통의상 의식용 ‘당의’를 한참동안 들여다 본다.

멜버른 국립 미술관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세계적 명작들이 즐비하다. 작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들 클래식 명작들이 이 갤러리의 전면에 나섰다면 ‘유럽의 아류’라는 논평을 들었을지도 모를터인데, 현대미술, 디지털아트, 다문화예술을 명작 보다 강조한 배치가 신선하다.

▶피카소, 모네, 세잔 클래식 명작도 즐비= 피카소의 1937년작 ‘우는 여인’, 피사로의 1897년작 ‘비오는 날의 몽마르뜨’, 세잔의 1881년작 ‘업힐 로드’, 모네의 1879년작 ‘베퇴유 마을’, 마네의 1860년작 ‘배 갑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91년작 ‘율리시스와 인어요괴 사이렌’ 등등 명작이 너무도 많다.

클래식 명작을 다른 곳에 운반하기 위해 임시로 둔 창고 처럼, 다닥다닥 붙여놓을 정도로 고작 두개의 방에 너무도 많은 명작들이 걸려있다. 이 미술관을 더 늘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신진 작가, 실험 작가, 현대작가들의 공간은 여유가 있었는데, 클래식 명작들을 왜 저렇게 배치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미술책에서 흔히 보는 거장과 명작 만을 중시하는 갤러리 배치는 유럽의 유명갤러리와 비슷하다거나 모방했다거나 하는 인상을 줄까봐 그랬던 것 같다. 다문화 존중 도시 멜버른 답게, 나라별 문화예술 작품을 널찍한 공간에 전시하고 신진 실험예술가들의 체면을 세워준 이 갤러리는 작품 배치 부터 남달랐고, 신선했다.

멜버른 국립미술관 뒷뜰 휴게공간에 만들어진 21세기 컬러풀 신전.

예술적 디자인의 푹신한 의자가 비정형으로 배치된 무료 휴게공간은 천장 전체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뒤덮었고, 벽면엔 이에 조응하는 느낌의 추상화가 좌우에 배치돼 있다. 이곳에만 와도 엘레강스 아티스틱 빅토리아를 느끼는데, 클래식 명작, 실험작, 청년작가, 디지털설치예술, 타국 문화예술의 포용적 전시와 함께 하니, 그 감동은 참으로 컸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까지 동원한 호주 현대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영국 테이트모던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멜버른 페더레이션광장의 불꽃놀이 [빅토리아주 관광청 제공]

▶페더레이션 광장= NGV에서 북쪽으로 야라강을 건너자마자,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인근엔 만남의 광장, 페더레이션 광장이 있다. 우리로 치면 서울시청광장-상암DMC-대학로를 합쳐놓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호주 영상 박물관과 미술관, 방송국, 레스토랑, 카페, 바 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직교형이 많은 멜버른 중심가 중 한 블록을 통째로 복합문화공간화하면서, 호주 건축가 베이츠 스마트가 치밀하게 설계해, 많은 놀거리,먹거리,감동거리 공간을 모아두었다.

멜버른 페더레이션광장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관람 [빅토리아주 관광청 제공]
멜버른 페더레이션광장에 있는 호주 SBS 방송국

대형 스크린을 통해 호주오픈테니스 대회, 질롱-멜버른 간 푸티(Footy:럭비와 축구 혼합형 인기종목) 결승전, 호주가 승리한 WBC야구 한국전, 호주의 WBC사상 첫 8강경기 쿠바전을 보는 곳이다. 또 연말 카운트다운 군중 파티도 여기서 연다. SBS 방송국이 있는데, 한국에 같은 이름의 방송사가 있다는 점을 알고, 한국어 서비스를 가장 많이 하는 호주 굴지의 언론사이다. 아울러 다양한 나라별 축제도 이곳에서 연다.

한국은 오는 5월13일 교민과 초청 문화예술인이 코리안데이를 개최해, 부채춤 등 K-헤리티지 무형유산, K-팝 커버댄스, 한식, 한복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페더레이션 광장 호주식 난타공연 [빅토리아주 관광청 제공]

▶응원광장+먹자골목+문화축제 한 곳에서= 페더레이션 광장은 먹자골목, 카페골목, 대중예술품 거리의 기능도 겸한다. 에스프레소 바, 중국요리, 호주 정식 요리, 햄버거 등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모든 취향과 예산에 맞는 음식이 있다. 미술 애호가, 영화 광이나 기념품을 수집하는 여행자의 기호도 충족시킨다.

이 구역 내엔 애니메이션 관련 문화관인 ACMI(호주영상박물관), 원주민 및 쿠리 예술품과 공예품이 전시된 현대적인 공간 쿠리(Koorie)헤리티지 트러스트 같은 문화인류학 공간, 국립 빅토리아 미술관(NGV)의 분점 격인 이안포터센터(호주 원주민 예술 및 현대 호주작가 작품), 호주 상업 갤러리 협회가 있다. 오래된 문화유산인데도 시민들의 결혼식을 허용하는 세인트폴 성당이 가깝다.

페더레이션 광장은 문화 축제, 전시회, 2000여개의 이벤트, 공연, 포럼, 영화, 콘서트, 패션쇼로 늘 붐빈다.

스퀘어의 남쪽 끝은 야라강변이라 야라강 유람선 투어, 가이드 투어, 자전거 대여 등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렇게 매력적인 기능을 모아놓았으니, 이곳에만 한해 1000여만명이 방문한다. 멜버른의 내공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계속〉

▶멜버른 여행 글 싣는 순서= 〈3월18일〉 ▷호주 멜버른 감동여행, 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 문화·예술·축제의 중심 V미술관·F광장 ▷질롱, 빅토리아주 2대 도시의 한국사랑 〈3월19일〉 ▷캐세이퍼시픽 특가로 호주여행..팔방미인 멜버른 여행 리스트 〈3월21일〉 ▷추억을 싣고 청정지역을 달리는 ‘퍼핑빌리 증기열차’ ▷그레이트 오션로드① 멜깁슨이 반한 ‘이곳’…남극의 파도와 서핑·코알라가 반긴다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파도의 침식이 빚어낸 웅장함”…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포트켐벨 ▷다채로운 멜버른을 몰라봤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지면〉 ▷옛 영화 한 장면처럼...추억 싣고 나무다리 달리는 증기열차〈지면〉 ▷남극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곳, 그레이트 오션로드〈지면〉 〈3월24일〉 ▷멜버른, 호주에서 가장 핫한 도시..메리어트 1000번째 호텔 호주 첫 리츠칼튼 멜버른 등장 〈3월28일〉 ▷이민박물관에서 울던 원주민 여학생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필립섬 펭귄들의 밤 퍼레이드 ▷금광 노동자 영혼 깃든 퀸빅토리아 시장 〈4월6일〉 ▷샘해밍턴 “멜버른엔 하루에도 4계절 있다” ▷산꼭대기 노천 온천의 감동, 모닝턴 매력 벨트 〈4월12일〉 [도심 랜드마크 여행] ①“멜버른 탐험 플린더스 역으로 가라” ②에펠탑·런던아이 닮은 멜버른 명물들 ③“열공 불가피” 웅장한 멜버른도서관 〈4월20일〉 ▷멜버른 골드러시 시간여행, 그램피언스 에코투어 ▷캥거루 호주머니가 있어서 호주라고?-호주에만 사는 동물 만나는 곳 ▷호주 제1도시 비상 목전, 멜버른 풍선여행 〈4.27〉 ▷신비의 붉은 모래..멜버른 두 개의 로얄보타닉 가든 ▷멜버른 샌드링엄 석양, 체리호의 낭만..현지인의 핫플 ▷멜팅 멜버른, 누구든 맞는 음식, 커피천국, BYO술문화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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