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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처음부터 위기인 위기는 없었다

‘도미노(domino).’ 첫 번째 블록을 넘어뜨리면 연달아 다른 블록이 쓰러지는 게임을 도미노라고 한다. 여기서 어떤 현상이 인접지역으로 파급되는 ‘도미노 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도미노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주(主·Domin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18세기 성직자의 복장을 도미노라 불렀는데 당시 유행하던 주사위놀이패 문양이 이 복장을 연상시킨다 해서 놀이 이름도 도미노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기원후를 가리키는 AD(Anno Domini·주의 해)의 도미니도 도미누스의 파생어다.

전 세계가 미국 IT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술렁이고 있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의 발 빠른 조치로 일단 숨은 돌린 상태지만 언제 제2의 SVB가 터질지를 두고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SVB 사태는 투자은행이나 2금융권 기관이 아닌 은행이 파산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최대 안전투자처인 예금을 관리하는 은행이, 그것도 40년 전통으로 자산 277조원 규모의 미국 16위 은행이 해체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이 위기의 서막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SVB가 대형 은행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금융권 전반의 구조 리스크로 확대될 공산은 크게 보지 않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장기채 평가 손실 등에 따른 유동성 문제가 과연 SVB만의 문제일까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또 SVB와 같은 특수은행들이 담당하는 부문의 부실이 지속될 경우 이는 실물경제 전반의 침체를 유발해 다시 금융권의 시스템 문제로도 전이될 수 있다.

그동안의 위기들은 처음부터 위기로 인식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해에는 미국 2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대출회사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하고, 그해 9월에는 영란은행이 모기지론업체인 노던록에 긴급 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 앞으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2008년 2월 노던록이 국유화되고, 미국 최대 저축은행이었던 워싱턴뮤추얼이 대단위 해고에 나설 때까지도 충분한 체감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연준이 미국 5대 IB 중 하나였던 베어스턴스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서면서 비로소 위기의 심각성이 인지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얼마 있지 않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발생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1995년 우리 기업 수출이 고꾸라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확대됐지만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무리한 단기차입이 이어졌고, 이는 연쇄 도산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경우도 2019년 11월 처음 중국 우한에서 발생됐었을 때만 해도 앞으로의 대재앙을 내다보지 못했다.

위기는 이름표를 달고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 이상 징후가 발생됐을 때 위기에 준하는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설령 위기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그나마 플랜을 가지고 수습할 수 있다. 부디 이번 SVB 사태가 도미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도미노는 한 번 무너지면 막기가 어렵듯이 한 번 무너진 금융시장 심리도 정상화하기가 너무 힘들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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