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자가 ‘김혜자 도시락’ 출시 전인 지난달 1일 GS25 도시락 제조처를 방문해 도시락을 시식하고 있다. [GS리테일 제공]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6년 만에 재출시된 ‘김혜자 도시락’이 편의점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10여년 전 ‘혜자롭다’라는 유행어를 만든 이 도시락은 재출시 20일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하루에만 5만 명이 식사 한 끼로 김혜자 도시락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는 GS25가 지금까지 내놓은 도시락 가운데 역대 최단기간 이뤄낸 기록이다.
“김혜자 도시락이 품질·가성비·나눔 키워드를 대표하는 만큼, 이번 재출시 제품도 합리적인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집밥이 되길 바랐어요. 배달 음식과 견줄 수 있는 온전한 식사로 손색없게 말이죠.”
헤럴드경제는 ‘390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가로 지난달 14일 김혜자 도시락을 재출시한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양호승 데일리푸드팀장을 9일 만났다. 그는 김혜자 도시락을 기획해 2010년 9월 시장에 처음으로 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도시락 상품기획자(MD)였다.
양호승 GS리테일 데일리푸드팀장이 ‘김혜자 도시락’의 재출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GS리테일 제공] |
김혜자 도시락은 2017년 계약 만료와 함께 단종됐다. 배우 생활을 하는데 있어 ‘도시락’ 이미지가 너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김혜자의 걱정이 커 재개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양 팀장은 도시락 재출시를 위해 지난해 12월 김혜자를 다시 만났다. 그의 우려와 달리 김혜자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NGO(비정부기구)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로 활동을 해온 김혜자의 강력한 주문사항은 단 하나였다.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은 김혜자 선생님의 철학이 도시락 재출시로 이어졌어요.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도시락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셨죠.” 실제로 한 달간 김혜자 도시락이 4000원이 채 안되는 가격으로 할인 판매 중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날 그는 인터뷰 중에 “할인 기간을 2주 추가 연장하게 됐다”라고도 귀띔했다. 6주간 이어지는 전례 없는 ‘600원 할인’ 프로모션인 것이다.
코로나19로 13년 전과 달리 배달음식이 보편화된 올해의 모습. 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다. [연합] |
양 팀장은 김혜자 도시락을 기획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배달음식 소비가 보편화된 점을 특히 고려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육질이 살아있는 고기를 배달시켜 20분 만에 먹을 수 있는 시대”라며 “반면 생산에서 점포까지 12시간, 이어 점포에서 최대 36시간을 버텨야 하는 게 편의점 도시락”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조 방식이 필요했다.
그가 소비자의 구매 여정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파헤치며 모든 밸류체인의 세부사항을 재설계한 이유다. 양 팀장이 GS리테일에 입사해 편의점 상품기획(MD) 업무뿐만이 아닌 품질관리, 퀵커머스, 밀키트 브랜드 ‘심플리쿡’ 사업을 거친 잔뼈 굵은 베테랑인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그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완제품 고기를 납품받는 기존 편의점 도시락 개발 방식을 바꿨다. 집에서 먹는 두껍고 모양이 큰 고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양 팀장은 “손이 많이 가긴 해도 공장에서 직접 고기를 조리하도록 공정 시스템을 효율화했다”며 “고기에 고소한 풍미가 더해지도록 참기름도 추가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김혜자 도시락’. [GS리테일 제공] |
배달음식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도시락에 넣을 계란 프라이도 반드시 반숙이어야만 했다. 양 팀장은 “노른자를 터뜨려서 먹으면 풍미가 더 살아난다”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3일간 공장에서 연구원과 함께 살다시피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진공 냉각 과정에서 속이 터지지 않는 반숙 계란 프라이를 만들기 위해 GS리테일 식품연구소는 달걀 300㎏를 사용해 반복 실험했다. 최적의 공정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계란 1만5000개가 활용했다는 의미다.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70일, 이 기간 양 팀장은 김혜자를 두 번이나 만났다. 그는 “김혜자 선생님이 꼼꼼하게 도시락 반찬을 하나하나 확인했다”며 “‘첫 출시 때만큼 소비자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상품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재출시 상품은 MZ세대에게 소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일부 경영진의 우려는 기우였을 정도다. 양 팀장이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 김혜자 도시락은 재출시 직후 전국 품절 사태가 이어졌고, 첫 주만에 카스 맥주·빙그레 바나나맛우유·서울우유·코카콜라 등 인기 상품 판매량을 모두 앞섰다.
그는 “올해도 (지난 출시 때처럼) 12~15종 정도의 김혜자 도시락을 차례차례 선보일 예정”이라며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 이렇게나 올라갔구나, 느껴지도록 도시락 상품 품질을 높이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2인 아들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자, 아들이 직장인이 됐을 때도 선택하게 되는 도시락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으로 점심 식대가 1만원이 넘어가면서 편의점 도시락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와 무관하게 편의점 도시락이 그 자체로 선택받을 수 있는 맛있는 한 끼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한편 현재까지 김혜자 도시락은 ‘제육볶음’, ‘오징어·불고기’ 총 2종이 출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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