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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의 청구서’에 휘청이는 세계 경제…‘脫러’ 체질 개선 가속 [우크라전 1년]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군 뒤로 러시아군의 집중 포격을 맞은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는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혼란으로 지난 1년간 큰 타격을 입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동안 세계 경제는 지정학적 위기와 불확실성에 휩싸이며 큰 타격을 입었다.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와 자원·곡물이 풍부한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혼란에 빠트렸고, 에너지·원자재·식량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이 고조됐다. 전세계가 ‘푸틴이 날린 청구서’를 받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 전망 속에 세계 경제는 점차 ‘러시아가 없는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유럽은 러시아발 ‘에너지 쇼크’에 맞서 대러 의존도를 공격적으로 줄였다. 세계가 최악의 경제 위기는 모면할 것이란 ‘연착륙’에 대한 기대마저 확산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악재이며 세계 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에 불확실성 고착화...위기의 세계 경제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밀을 수확하는 모습.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개전 초기 세계 곡물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로이터]

밀과 천연가스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와 세계 최대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순식간에 세계 에너지·식량 공급망을 마비시켰다. 개전 초기 밀과 대두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대한 맞불로 천연가스 공급을 틀어막자 천연가스 가격도 개전 이전 대비 5배까지 뛰었다.

세계 각국은 동시다발적으로 에너지·식량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당장 아프리카와 중동 및 아시아 일부 지역 등 빈곤국과 개발도상국의 식량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밀의 최대 수입국인 나이지리아의 경우 지난해 평균 식품 가격이 37%나 급등했다. 밀 수입의 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던 레바논의 경우 밀이 부족해 빵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했다.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해 온 유럽도 러시아발 에너지 쇼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유럽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해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10%대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 기록을 매달 갈아치웠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마저도 유례없는 에너지난에 휘청였다. 지난해 4분기 -0.2%의 성장률을 기록한 독일 경제는 올해 1분기에도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돼 기술적 경기 침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본격화된 ‘신냉전’ 구도는 경제지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각국은 ‘친(親)러’ 대 ‘반(反)러’ 진영으로 갈리면서 무역 네트워크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지경학적 분열과 다자주의의 미래’란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분열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7% 감소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IMF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시아 각국 교역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올해 아시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1%에서 4.3%로 내렸다.

세계 경제는 더이상 러시아가 필요치 않다
러시아로부터 공급되는 천연가스가 지나는 독일 몰나우의 가스관 시설.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서방의 제재에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자, 유럽은 천연가스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한편 녹색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며 대러 의존도 줄이기에 나섰다. [로이터]

위기 속에서도 세계는 전시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은 지난 1년간 에너지, 식량 공급망에서 러시아의 빈자리를 메울 대안을 모색하며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특히나 유럽이 겨울철 이상 고온 덕분에 러시아의 ‘에너지 협박’을 무력화시킨데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서 천연가스와 원유를 앞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렛대 전략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현재 천연가스 가격은 1년새 최저로 떨어져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 정치매체 포린폴리시는 “푸틴은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에너지를 영구적으로 약화시켜버렸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유럽은 러시아 대신 미국으로 천연가스 공급망을 다변화했다. 그리고 녹색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며 장기적으로도 대러 의존 자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덕분에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불과 1년 사이에 9%까지 줄어들었다.

원유 시장에서도 러시아의 입김은 예전같지 않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원유 수출 중단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제 유가가 2주간 40%나 폭등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한 국가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를 선언했음에도 유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눈폭풍이 휩쓸고 간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세계 경제의 대러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는 낙관적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여전히 전쟁이 글로벌 경제의 최대 악재이며 침체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로이터]

하지만 여전히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세계 경제는 여전히 위기에 놓여있다. 고물가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데다, 전쟁이 세계 경제 반등 및 성장의 기회를 모두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3.0%에서 1.7%로 하향하며, 그 배경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목했다.

유럽상공회의소협회는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조사에서 단기간에 식품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혼란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올해가 “매우 도전적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뤽 프리덴 협회장은 “강력한 성장은 없다”면서 “전쟁 상황을 감안할 때 공급망 문제도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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