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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통큰 결단 필요한 사용후핵연료 저장·관리시설 확보

지난해 12월 핀란드 에우라요키(Eurajoki)시의 베사 라카니에미 시장이 경주의 원자력환경공단을 방문했다. 이 도시는 핀란드 남서부의 작은 해안도시로, 인구가 1만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핀란드의 4개 원자로 가운데 2개가 있고 3번째 원자로는 현재 건설 중이다. 주목할 사항은 사용후핵연료의 심지층처분장 건설이 지난 2004년 6월에 시작돼 현장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설은 2025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라카니에미 시장은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핀란드는 에우라요키 고준위방폐장 운영을 위해 1978년부터 꾸준히 신뢰관계를 쌓아왔다 ”고 말했다. 고준위방폐장 운영을 위해서는 주민-지자체-정부-원전관련 공공기관 간 신뢰 구축과 투명한 정보공유가 선행돼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에우라요키 시가 고준위방폐장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높은 주민수용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주민이 원자력에 대해 정보를 여과 없이 받을 수 있게 공유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수용성이 올라가는 기반이 됐다.

경주시는 지난해 3월 준공된 월성원자력본부 부지 내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 증설과 관련해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당시 월성본부의 4개의 중수로 원전은 사용후핵연료 저장공간 포화가 턱 밑까지 임박한 상태였다. 맥스터가 증설되지 않으면 원전을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민 숙의 과정을 거쳐 80%의 주민이 증설을 찬성해 2022년 3월 추가 시설을 준공했고 중수로 원전의 가동 중단 사태도 방지했다.

국내 25기 가동원전에서 해마다 75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는데 1978년 고리1호기의 상업운전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쌓인 사용후핵연료는 약 1만8000t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 에너지안보에 원자력 비중을 높임으로써 이 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말 산업통상자원부의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리·한빛은 2031년, 한울은 2032년에 사용후핵연료가 가득 찬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재 이 난제를 해결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련 특별 법안 3건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언제 입법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부지 선정 절차 착수에서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 37년가량 걸릴 것이라고 한다. 결국 영구처분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원전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숙제를 안고 속앓이해서는 안 된다. 우선 특별법 제정에 여야가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적극 나서야 하고 국민도 투명한 정보 공유를 전제로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원자력은 우리 세대만 쓰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와 처분의 문제는 자손 대대로 안고 가야 하는 현재와 미래의 지속적인 현안이다. 핀란드의 당사자 간 신뢰 구축과 에우라요키 시의 시민이 보여준 통 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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