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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70년 전 노동법 체계로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법 제정이 정치 논리에 빠져 들면 사람의 행복을 저해한다. 일자리와 소득의 결정에 관련된 노동법이 특히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6·25전쟁 와중에 제정된 우리나라 노동법들은 경제와 노동의 현실보다 정치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 제정된 노동 4법, 즉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은 당시 국회의 논의를 보면 공산주의의 위협과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건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이나 농촌에서 도시로의 노동력 이동 그리고 빈곤과 불평등을 낮추기 위한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1953년 제정된 노동법은 노동조합과 노동쟁의는 억제하고 대신 법적으로 근로 기준을 높이는 데에 역점을 뒀다. 노동조합의 활동과 노동쟁의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감독의 범위가 입법의 주요 쟁점이 됐다. 이러한 특징은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 당시 노동위원회는 노조활동과 노동쟁의의 합법성에 대한 심사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동위원회의 구성과 공익위원의 선출 방식이 쟁점이 됐다. 집단적 노동법보다 덜하지만 근로기준법은 특히 근로시간 제한이 쟁점이 됐고, 법 시행에 대한 회의론과 연기론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이 당시 정치는 미(美) 군정의 영향하에 놓였고, 일본 노동법을 한국에 이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결과, 현실과 괴리된 노동법은 일자리와 소득향상에 방해가 됐고 실업과 빈곤은 악화했다.

이 문제는 1960년대 들어와 경제성장이 나라의 최고 과제가 되면서 극복했지만 노동법을 현실에 맞도록 개정하지 못해 기업이 노동법을 무시하고 정부는 이를 방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만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터져 나와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이러한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존 노동법 체계는 유지하되, 노조의 활동과 노동쟁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줄이고, 근로시간 등에 대한 규제는 강화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노동법 강화에 계속 매달렸지만 세계 각국은 노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의 현대화에 나섰다. 냉전 체제가 무너져 세계화가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디지털기술이 생산은 물론 사람의 삶과 의식까지 바꾸면서 고용관계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축소할 필요성이 자연히 커졌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노동법에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자연히 형성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나아가면서 경제성장의 잠재력은 빠르게 감소하고, 자본과 일자리는 인건비 부담이 작은 해외로 유출되며, 노동시장의 경직화로 기득권층과 취약계층으로 이중 구조화돼 불평등이 커져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했다.

정부는 올해를 ‘노동개혁 추진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우리나라 노동법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요소를 넘어 혁신을 이끄는 인적 자본으로 키우고, 노동 이동을 촉진해 취약계층의 고용과 소득향상의 기회를 끌어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동법의 역사에 비춰보면 노동개혁의 의미는 70년 묵은, 낡은 노동법 체계를 현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국민도 70년 전의 노동법 체계가 자신의 미래를 밝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정치인 스스로 노동법의 탈(脫)정치화에 나서야 할 때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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