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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사람이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1908)’. 그림을 감상할 때 우리는 아름다움만을 느끼진 않습니다. 이면에 담겨 있는 화가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그림에 투영하기도 합니다. 수십년 동안 호르몬을 연구해온 탓일까요?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림을 보며 호르몬을 읽습니다. 호르몬을 ‘우리 삶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표현합니다. 호르몬은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생각과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당시 화가의 몸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피사체를 보는 시선, 색감과 형체를 구현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집니다. 이때 몸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호르몬입니다.

‘키스’는 명작입니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로, 아버지의 직업이 금세공업자였다고 합니다. 클림트가 왜 화려한 금박의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가 되지요?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두 남녀의 내밀한 스킨십은 누군가와의 첫 입맞춤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성의 드레스 문양 보이시나요? 미생물 닮은 원형 무늬 말입니다. 남자의 옷에서 보이는 직사각형 장식과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림 속 남자는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여자를 품에 안은 자세와 검은색 피부, 옷에 그려진 검은색 사각형 패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여인은 다소 수동적입니다. 무릎을 구부린 순종적인 자세와 하얀색 피부, 옷에 그려진 원형 무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꽃이 흩뿌려진 작은 초원 위에 서 있는 두 연인은 주변과 분리돼 그들을 마치 후광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빛 안에서 서로에게 황홀히 취해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감은 여인의 발밑에 절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열렬한 사랑을 한다 해도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사랑은 그리 녹록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현실의 고단함과 험난함을 망각하고 극복하려는 치열한 열정을 불사르는 것일까요?

혹독한 현실을 잊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을까요? 저는 ‘엔도르핀’ 호르몬이라고 생각합니다. 엔도르핀은 마약성 진통제로 잘 알려진 모르핀과 구조가 비슷합니다. 주로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데 부족할 시에 가장 흔히 발생하는 질병은 우울증과 만성통증입니다. 결핍이 심하면 감정을 못 느끼는 무감정증, 희소 질환인 통증을 못 느끼는 감각이상증도 유발될 수 있지요. 엔도르핀은 말 그대로 몸속에서 분비되는 아편입니다. 만약 의학이 발전해서 엔도르핀을 직접 제조할 수 있게 된다면 완벽하게 기분 좋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약물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죠.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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