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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가난한 크리스마스”…전세계 물가 폭등에 선물도 안 사[글로벌플러스]
두 자릿수 인플레, 매주 치솟는 금리
‘부자나라’ 미국, 유럽, 일본도 휘청
술, 선물, 약속 제일 먼저 줄이고
칠면조 3마리서 1마리로 식비 절약
유럽 푸드뱅크들 “올해가 존폐위기 기로”

일본 나고야의 한 제과점에 크리스마스 시즌 케이크가 진열돼 있다. [AP]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작년 이맘때엔 다이아몬드가 일렬로 박혀 있는 테니스팔찌와 목걸이 주문이 쇄도했죠.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짜리를 사는지 가격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았어요. 정말 많이 팔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보석이 없거나 있더라도 딱 한 개 박혀 있는 것들이 잘나가네요. 다들 가격에 엄청 예민해졌어요.”

미국 뉴욕주 웨스트체스터의 한 보석상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달라진 크리스마스 소비행태다. 초강력 인플레이션과 치솟은 금리 여파가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인들의 선물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유명 크리스마스 수제장식품 상점 ‘요한 워너(Johann Wanner)’에 장식들이 진열돼 있다. [로이터]

미국 소비자들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는 등 전략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가격을 따지면 무엇하랴. 기본적으로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크리스마스 식탁에 올릴 케이크와 칠면조 등 대부분의 식품가격이 급등했고, 집 안을 장식할 크리스마스장식용 생나무 가격도 10% 넘게 인상됐다. 이는 생나무 가격이고 소매점에서 가공 후에는 가격이 더 올라간다.

결국 일부 소비자는 플라스틱 트리를 대안으로 선택하는 추세다. 수년 동안 재사용이 가능하고 조명 등 각종 장식품이 함께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케이크와 트리 같은 것들은 연휴 기분을 내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라 줄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는 항목은 선물, 술, 사교생활 같은 것들이다.

미국에서는 상록수를 베어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한다. [게티이미지]

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 소비자의 40%는 ‘올 연말 시즌에 자신을 위한 선물에 돈을 덜 쓸 것’, 35%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물에 돈을 덜 쓸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25%는 ‘선물 자체를 안 살 것’이라고 답했다.

영국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사상 최악의 생계비 위기가 닥친 영국 가정이 올해 크리스마스를 예년과 비슷하게 준비하려면 평균 33%를 더 지불해야 한다고 전했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치인 11.1%로 나타나면서 5%를 밑도는 임금 상승률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식료품 가격은 거의 20% 올랐고, 가정의 난방비는 150% 이상 뛰었다.

예를 들면 칠면조의 경우 사료비 인상과 조류독감으로 지난 1년간 가격이 약 19% 올랐다. 지난해에 칠면조 세 마리를 올렸다면 올해는 한 마리만 올리는 절충안을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해도 전기오븐에서 3시간 동안 칠면조를 요리하는 비용이 62% 치솟았고, 온 가족이 모여 크리스마스파티를 즐기는 동안 6시간 켜놓은 가스 중앙난방비용은 157%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파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위기를 겪는 중이다.

크리스마스가 대목인 영국의 펍(Pub)도 비관적인 전망이 크다. 12월은 크리스마스파티와 송년회 모임 덕분에 연간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중요한 달이지만 현재 예약이 2019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보다 20% 줄었다고 한다.

연말을 앞두고 일본에선 크리스마스케이크 평균 가격이 지난해 대비 5% 상승해 평균 4040엔(약 3만8600원)을 기록했다. 케이크의 재료인 밀가루와 우유가 각각 52%와 11% 올랐고, 설탕도 8%의 상승률을 보였다.

올해 역사적인 엔저(엔화 가치 하락)도 수입비용을 부풀려 다양한 상품의 소비자가격이 올랐다. 케이크 외에도 테이크아웃 종이박스와 식품포장 필름 가격은 물론 가스와 전기요금도 치솟아 제과업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11월 기준 밀가루(중력분 1㎏) 가격도 봉지당 1900원으로 1년 전보다 37.7% 올랐고, 설탕도 11.2% 올랐다. 유업체들도 최근 일제히 우유 원유 가격을 ℓ당 약 52원 올렸다. 이 재료가 들어가는 케이크 가격 상승 역시 불가피해졌다.

유럽의 부유한 나라 덴마크에서는 2만가구에 가까운 아이들이 이번 크리스마스 때 적십자사에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현지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1만5000명이 지원을 요청한 데 이어 올해는 끼니 걱정을 하는 아동이 5000명 더 늘어난 것이다. 지원을 받는 아동들은 식료품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126달러의 기프트카드가 나온다.

푸드뱅크들도 생계비 위기 속에서 암울한 크리스마스와 가장 바쁜 겨울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의 데일리미러지에 따르면 1300개 이상의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트러셀트러스트는 올해 4~9월에 2021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2% 더 많은 식료품 꾸러미를 나눠줬다.

영국의 대형 마트에서 쇼핑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 자선단체의 최고경영자 엠마 레비는 미러에 “생활비 비상상태로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푸드뱅크들은 가장 힘든 겨울을 맞을 것”이라며 “푸드뱅크는 지난해보다 두 배나 많은 식품을 구입해야 하고 운영비 상승까지 겹쳐 계속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전례 없이 ‘가난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게 된 가운데 그래도 인생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쇼핑객들은 특별히 지갑을 열기도 한다.

로이터는 스위스 도시 바젤에 있는 유명 크리스마스 수제장식품 상점 ‘요한 워너(Johann Wanner)’의 사례를 소개했다. 83세의 상점주인 요한 워너는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은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나와서 크리스마스 장식품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 런던, 파리, 로마, 중국, 일본 등의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이 가게는 지난 토요일에만 약 300명의 고객이 들러 장식품을 구매해갔다고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스위스 점포를 찾아온 관광객 샌드라 타카이는 “인생은 짧다. 나는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가족, 손주들이 기억할 수 있는 행복을 원한다”고 밝게 웃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파티 때 칠면조 요리를 즐겨 먹는다. [게티이미지]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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