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는 열렸고, 사람들은 생각 많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1548년 핼러윈 전야, 코시모 데 메디치와 가족들은 신대륙에서 도착했다는 이상한 채소를 보기 위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기대를 잔뜩 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구니를 들여다 본 이들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이 채소에 그다지 감동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에 데뷔한 이 최신 수입품에 사람들이 붙인 이름은 ‘황금빛 사과’,포모도로였다.
그 후 300년 동안 토마토는 이탈리아 요리에서 어떤 위치도 갖지 못했다.
토마토는 수천 년 전부터 멕시코 땅에서 재배돼온 채소로 아즈텍 사람들은 ‘시토마틀’이라고 불렀다. 수프나 스튜로 조리해서 먹고, 생으로 잘라 칠리와 허브를 곁들여 소스로 먹거나 고추 감자와 함께 볶아 먹었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정복한 뒤 가져온 한 줌의 토마토 씨앗은 세계 식문화를 바꿔놓게 된다.
‘세상을 바꾼 10개의 토마토’(황소자리)는 토마토 경작자인 윌리엄 알렉산더의 최근작으로, 토마토의 흔적을 찾아 떠난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 이야기다.
맨 먼저 16세기 코시모 데 메디치에 첫 선을 보인 토마토의 흔적을 떠난 저자는 복사기 가득한 관공서로 쓰이는 팔라초 메디치에 실망을 느끼지만 피사 대성당의 청동문에 새겨진 토마토를 발견한다. 당시 토마토는 호박에 가까운 모양이었고, 식용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토마토는 관상용이었다.
초기 아메리카에선 토마토에 독이 있다고 믿었고 대부분은 "역겹고 혐오스럽다"며 싫어했다. 미국의 초기 정물화가인 라파엘 필이 1810년께 그린 정물화에 등장하는 토마토 역시 피사 대성당의 호박 혹은 피망처럼 생긴 토마토와 비슷한 모습이다.
혐오스런 대상에서 미국의 식탁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에는 1820년 9월26일 뉴저지주 세일럼의 로버트 기번 존슨 대령의 전설과도 같은 일화가 있다. 대령은 토마토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법원 계단 꼭대기에 올라가 즙이 뚝뚝 떨어지는 토마토를 배어 물며 이 열매가 무해할 뿐 아니라 영양도 풍부하다는 걸 증명했다고 알려진다.저자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살이 붙고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는지도 추적한다. 이후 토마토는 인기 과일이 되고 세일럼은 미국 최고 토마토 산지가 된다.
여기에는 1830년대 건강 신드롬이 한몫했다. 건강에 대한 대중의 갑작스런 관심은 유럽을 휩쓸던 콜레라 팬데믹에 의해 촉발, 영양식으로 토마토 광풍이 불게 된다. 매끼 식탁에 토마토가 올랐으며, 가짜 약장수들이 판을 쳤다.
책에는 가난한 나폴리 마을의 전설이 된 마르게리타 피자, 통조림을 만들고 버려진 찌꺼기를 모아 토마토 케찹이라는 혁신 조미료를 탄생시킨 불세출의 사업가, 무솔리니의 파스타 금지령에 대항해 시에스타 마저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인 남부 이탈리아인들, 피자와 파스타가 미국인들의 천부적 상술 덕에 글로벌 푸드로 변신하게 된 뒷이야기와 최근 수경재배 까지 토마토의 여정을 10개의 굵직한 역사적 장면을 덕후적 애정을 담아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세상을 바꾼 10개의 토마토/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이은정 옮김/황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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