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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코인판 리먼 사태’ 대비해야 한다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미국 FTX 파산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FTX의 부채 규모가 최대 500억달러(약 66조원), 채권자가 10만명에 달하는 메가톤급인데, 파장이 이제부터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FTX는 고객 돈을 계열사에 빌려주는 등 부적절하게 운용하고, 해킹에 의한 자금유출 정황도 드러났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FTX 사태는 금융상 오류가 아니라 사기 냄새가 난다”고까지 비판한 이유다. 금융회사가 신뢰를 잃으면 곧 ‘런(run·인출사태)’이 일어나고, 파장은 금방 시장 전체로 번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는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조짐이 보인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고 있고, 비트코크, AAX 등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이용자 출금을 한시 중단했다. 월가 기관투자가들을 필두로 이탈도 시작됐다. 블룸버그통신은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서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 이탈 → 가격 하락 → 이탈 가속 → 가격 추가 급락’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유진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FTX발(發) 유동성 위기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가치가 달러 등 특정 통화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코인)이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한 미 국채와 회사채 등에 대한 매도 압력으로 작용해 전통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코인 업계도 폭풍전야다. 국내 FTX 이용자가 1만명가량이고, 컴투스그룹의 자체 암호화폐 C2X는 FTX에 상장돼 있다. 또 국내 가상자산 금융서비스업체 델리오는 FTX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코인 대출업체 블록파이 등에서 약 6억달러의 가상자산을 공급받는 계약을 하고 있다. 그나마 테라루나 사태 여파로 블록파이와의 계약이 이행되지 않은 건 다행이다. 국내 게임사 위메이드가 만든 가상화폐 위믹스는 FTX 모델과 비슷하게 자회사와 코인 담보대출 관계로 엮여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 10명 중 6명이 MZ세대다. 이들의 체감경제고통지수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는 전경련 조사가 있었는데, 고통이 가중될까 걱정된다.

제방이 어디서 뚫릴지 모른다.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들이 투자자 보호, 거래소 전산시스템 안정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서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불공정거래 규제, 이용자 자산보호조항 입법, 고객예치금 별도기관 보관 의무화 등까지 더 나아가야 한다. 혹시 모를 ‘코인판 리먼 사태’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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