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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한국의 크레디트

“돈을 약속한 날짜에 잘 갚는다고 소문이 난 사람은 타인의 당장 쓸 일이 없는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벤자민 프랭클린)

레고랜드발 국내 자금 시장 경색이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서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밝히고 금융지주사들이 95조원의 자금지원안을 내놨지만,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급기야 금융위원회는 11일에도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확대를 골자로 하는 추가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이 대책이 자금 시장을 활성화시킬지는 의문이다.

이미 ‘약속한 날짜에 잘 갚는다’는 신용(credit)을 잃었기 때문이다.

신용의 역사는 깊다. 특히 ‘원금에 정해진 이자를 더해 돌려주겠다’는 일종의 차용증서인 채권은 주식과 달리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다. 수익이 정해져있고, 발행 주체가 기업 뿐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돈을 떼먹을리 없는 곳’ 들도 상당수기 때문이다. 실제 채권 시장은 세금 외에도 자금이 필요했던 각국이 발행에 나서면서 규모를 키워나가기도 했다.

레고랜드에 이어 흥국생명이 뒤늦게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이행 계획을 철회한 데 대해,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당장 지자체인 강원도가 뒤늦게 채무보증을 번복한 것은 물론이고, 보험사의 콜옵션 미이행을 관계부처가 알고도 묵인했다는 점도 그렇다. 앞서 금융위는 흥국생명 콜옵션 이행과 관련해 “금융위, 기재부, 금감원 등은 관련한 일정, 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소통해 왔다”고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잘못된 소통을 한 셈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9일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흥국생명이 콜옵션 행사 안 하겠다고 발표했고, 문제 될 것 같아서 ‘흥국생명 괜찮은 회사다’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근데 이게 해명이 안 될 것 같아 미리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대응하자고 했고, 콜옵션 이행(RP 매입 등)을 다시 추진해 사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흥국생명도 대주주 증자로 재무건전성을 해결하겠다고 해 대외 신뢰도가 제고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금융당국도 더 긴장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다. 선제적으로 플랜B를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은 사태는 해결됐고, 대외 신뢰도도 제고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투자심리는 정부의 ‘안심멘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시장에 “한국에 투자했다가 약속된 돈을 못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퍼졌는데, 돈을 더 풀겠다는 정부 지원 정책으로 신용을 되찾을 리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자금 시장 경색이 나타난 근본 이유는 금리인상과 높은 환율 등 예상치 못한 경제 변수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와 환율의 안정적 흐름을 예상하며 채권을 발행했는데 상황이 달라져 갚기 어려워진 것이 윤 정부 탓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 시 그릇된 판단으로 국가 신용을 잃어버린다면, 이는 명백한 정부 탓이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위기 때 가늠된다.

취임 6개월, 이젠 진짜 ‘일 잘하는 정부’ 를 보여줄 때다.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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