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 지원·인테리어 내걸고 세입자 모시기도
“갭투자 많거나 입주 몰린 지역 거래 유의해야”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 매물. [연합] |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 서울 강북의 한 소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A씨는 내년 3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임차인과 갱신계약을 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 1억원 가까이 떨어진 데다 호가가 계속 빠지고 있어 새 임차인을 받으면 현 임차인에게 내줄 보증금이 부족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세입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까지 들려 불안하기만 하다.
A씨는 임차인에게 보증금 4000만원 감액을 제안할 계획인데 추가로 이자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추가 대출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재계약이 절실하다. 계약기간은 남았지만 시장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갱신계약 확답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전세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보이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는 ‘역전세’는 물론 보증금 차액을 월세로 갚는 ‘역월세’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사비 지원이나 인테리어 등을 내걸고 세입자 모시기에 나선 집주인도 있다. 전세물량이 쌓이고 전셋값이 하향 조정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른바 ‘갑을관계’가 역전되고 있는 모양새다.
23일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수도권의 아파트 전세물건은 지난 21일 기준 12만2025건으로 한 달 전(10만3325건)보다 18.1% 늘었다. 정부가 허위 매물 과태료 부과를 시행한 2020년 8월 이후 가장 많은 물량으로 올해 들어서만 두 배 가량 늘었다. 갱신계약 확대와 월세 선호 등으로 신규 전세수요가 줄어든 데다 주택 거래절벽을 피해 매매를 전세로 돌린 집주인까지 늘면서 물량이 급증한 것이다.
전세물건이 적체되면서 가격도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 9월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달 대비 0.78%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집값이 급락한 2009년 1월 –1.26%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2월 하락 전환한 뒤 6월까지 0.1% 미만 하락에 그쳤으나 7월(–0.16)과 8월(–0.45) 점차 내림세를 키우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신규 전세를 문의하는 손님이 큰 폭으로 줄어 한산하다”며 “금리인상 등의 부담으로 가급적 이동을 꺼리고 있으며 꼭 필요한 수요자도 고가의 전세보다는 반전세나 월세를 찾는 편”이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역전세·역월세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당장 목돈을 마련하기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려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 일부를 내주거나 하락한 보증금만큼 매달 이자를 내고 재계약을 하는 식이다. 자칫 투매(손해를 무릅쓰고 싼값에 파는 것)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계책인 셈이다.
역전세·역월세 현상은 특히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했거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산 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린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는 12월 전세만기를 앞둔 한 신혼부부는 “집주인이 재계약 시 월 이자지원을 약속했다. 전세대출 금리가 올라 이자가 더 내야 했던 우리로서는 좋은 조건”이라며 “2년 전 계약 당시만 해도 갱신 때 5%만 인상해도 다행이겠거니 싶었는데 시장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걸 느낀다”고 했다.
기준금리 3% 시대가 열린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전셋값 하락과 함께 역전세·역월세가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과거 갭투자가 많았거나 아파트 입주 여파가 있는 수도권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수급불균형에 따른 역전세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거래 당사자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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