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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 칼럼] 유신선포 50년, 국회해산 무효와 개헌을 추진하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기 삶을 겪은 그대로 드러내는 필치로 유명하다. 아내가 있는 외국 외교관과의 불륜 정사를 묘사한 ‘단순한 열정’이나 대학생 때 치른 불법 낙태를 쓴 ‘사건’ 등의 작품은 비판도 수반했지만 새로운 문학적 가치로 평가받았다. 글쓰기에서 어느 정도나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는 게 적당한지 나에겐 늘 고민거리다. 유신선포일인 오늘도 그런 고민을 해야 할 날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 박정희가 유신 선포로 재차 쿠데타를 감행한 지 50년이 됐다. 유신 체제는 1971년 10월 15일 위수령이 그 전주곡이었다. 전국 각 대학에서 1600여명을 불법 연행했고 학생회 간부 165명을 학교에서 제적시켜 군대 강제 입영시켰다. 나 자신도 그 ‘71동지회’의 일원이어서 당시 경찰서와 중앙정보부에서 당한 고문 악행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국회의 권능은 비상국무회의에 맡겨졌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아 입법권을 가질 수 없는 비상국무회의가 유신헌법안을 의결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국민투표도 비상계엄령 아래서 유신헌법안에 대한 찬반토론이 일절 봉쇄됐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도 금지된 가운데 치러졌다. 투표 결과 찬성률이 90%를 상회했다. 정권 측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봤던지 1년여 뒤 재투표를 실시했다. 철저히 공작적인 국민투표였다.

해방 후 헌정사에서 유신쿠데타와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 그리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모두 세 차례 국회가 해산됐다. 국회가 이 같은 피해당사 기구임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유감표명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쿠데타 집단의 국회 해산이란 국민주권과 대한민국 건국이념에 정면 배치된다. 국회는 세 차례의 국회 해산이 모두 무효임을 선언해야 한다.

올해는 또 유신 2기에 해당하는 전두환 내란정권을 종식시킨 6월 시민항쟁 35주년이다. 전두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살상 진압한 뒤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어 국회를 대체했다. 이 입법회의와 비상국무회의라는 유사 입법기구가 만든 법률이 459개에 이른다. 5·16 쿠데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유사 법률도 1015개다. 실정법으로서 경과 조치가 필요하더라도 군사독재의 잔재를 조사해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 민주화운동단체와 국회의원 공동 대표단으로 구성된 ‘유신50년군사독재청산위원회’는 학계 및 법조계와 수차례 토론회를 거쳐 유사 법률 중 1차 개폐 대상 10개를 선정했다. 예비군이 동원훈련 시 군법 적용을 받게 한 것이나 집회 및 시위의 사전 신고 절차 위반에 대해 과태료가 아니라 실형 처벌할 수 있게 한 조항, 그리고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한 모자보건법 등이다.

이 같은 유사 입법 조사와 국회 해산 무효를 담은 결의안이 인재근 의원의 대표발의로 심의 절차에 들어갔다. 의원 126명이 서명했고 그 외에도 23명이 찬성 의사를 밝혀 사실상 통과에 문제가 없으나 여야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

유사 입법 개폐 대상 1순위는 대통령 5년 단임제 등 유신헌법의 잔재가 남아 있는 현행 헌법이다. 1987년 개헌했지만 4년 중임제 등 세계 보편적 민주헌법과 괴리가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취임사에서 승자독식의 헌법을 고칠 때가 됐다고 역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명기를 언급했다. 두 국가 지도자가 그 필요성을 밝혔으니 개헌 사유와 동력은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과거사에 얽매여서는 안 되지만 과거 경험을 결코 잊어서도 안 된다. 유신군사독재 청산을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와 국민 모두가 유신독재 아래서 상처를 입었으니만큼 유신 청산은 직접적 피해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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