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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실격

민심이 흉흉하면 나라에 냉소 짙은 유머가 퍼진다. 러시아가 요즘 그렇다. 권력자를 대놓고 욕하긴 두려워 에둘러 흉보고 울화를 가라앉힌다. ‘냉장고와 TV의 싸움에선 TV가 이겼는데 지금 TV는 다른 종류의 냉장고와 싸워야 한다. 시체가 보관된 냉장고’라는 블랙유머다. 냉장고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TV는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선전)를 뜻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동원령(mobilization)을 발동하자 부상한 글귀다. 푸틴 뜻대로 안 되거나 저항에 부딪힐 거란 행간이다. 동원령도 러시아어 ‘무덤(mogila)’을 활용해 ‘무덤으로 간다(mogilization)’로 자조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했을 땐 정치는 먼 얘기라며 출렁이지 않던 민심인데 ‘총알받이’처지가 되니 요동친다. 크렘린은 애초 30만명 동원령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상 총동원령이라는 관측이 있다. 러시아를 탈출하는 젊은이가 많은 이유다. ‘21세기 차르(황제)’라던 푸틴은 여러모로 체면을 구겼다. 한참 아래로 봤던 우크라이나를 제압하지 못했고, 핵심 지지층도 이탈해서다. 징집 과정에선 저소득층·소수인종에만 집중해 불공정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세계 절반 넘는 국가가 적(適)인데 내치(內治)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다.

‘푸틴은 모든 러시아인의 대통령이 되는 걸 그만뒀다’(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측근들은 푸틴을 이을 적임자를 찾고 있을 것이다’(디나 카파에바 조지아공대 교수)라는 진단은 비뚤어진 권력을 휘두르는 푸틴의 단면을 투영하고 있다. 그의 힘이 언제까지 갈지와 별개로 국민과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실력 있는 지도자로선 실격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또는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한국을 ‘날리면’ 논란으로 허우적거리게 하는 문장이다. 러시아의 블랙유머는 바닥민심에서 출발한 건데 ‘날리면’의 저작권은 설화(舌禍)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과 파장 확대를 막겠다고 나선 대통령실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에 갔던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헤어진 직후 내뱉은 저 문장에서 ‘바이든’으로 들으면 선동적 좌파, ‘날리면’으로 들어야 ‘국익·한미 동맹 수호자’라는 식으로 집권여당은 직진하고 있다.

서글픈 자기파괴적 레토릭이다. 미국은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든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자국 이익 때문에 한미 동맹을 어그러뜨릴 여유가 없다. ‘날리면’보다 더 터무니없는 말을 끼워넣어 백악관의 심기 경호를 하려 했어도 적시타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 워싱턴은 ‘날리면’ 논란은 대수롭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차후 ‘뒤끝’이 있을지언정 외교의 주파수는 그렇게 상대를 탐색하고, 정보를 취합하고 평가가 끝난 뒤 필요하면 무시하는 것이다.

남는 건 한국의 ‘국회의원에게 욕설하고 언론을 겁박하는 대통령’이다. 야당과 협치를 부끄러움 없이걷어차고, 대국민 소통채널과 불화해선 ‘식물대통령’이 될 뿐인데 그 길 초입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걸 그만두겠다고 작심한 게 아니면 유턴해 격에 맞지 않는 언어습관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 게 맞다. 전임 정권이나 야당 대표 조사·수사로 국면 전환을 시도해도 시간은 윤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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