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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너지와의 사투...유럽, 혹독한 겨울이 온다
러-우크라 전쟁에 ‘에너지 보릿고개’ 직면
EU, 내년 3월까지 70년대 식 에너지 절약 운동
샤워는 5분내·실내온도 19도·야간 전광판 금지
獨, 가스가격 상한제·佛, 전력도매가 금지 경고
내년 러시아 가스제로 원년...각국 위기감 고조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스테인레스강 제조기업 아페람의 벨기에 공장 내부 전경. 이 공장은 에너지 위기 속에서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독일 제과·제빵소도 급등한 가스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다. 소규모 제과·제빵 공장들은 당분간 휴업을 고려 중이다. 독일 헤센주 노이이젠부르크에 있는 한 빵 공장에서 직원이 대형 가스 오븐에 빵 반죽을 밀어넣고 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있는 그리스 국회의사당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해가 진 뒤 에너지 절약 운동에 동참해 불이 꺼져 있고,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그림자만 보인다. [로이터·AP]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럽 대륙은 당장 올 겨울부터 러시아 가스 없이 지내야 하는 에너지 보릿고개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이 기근의 시대가 내년 상당 기간까지 이어지는 것은 물론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가스관(노르트스트림1·2)이 외부 공격에 의해 파손돼 상황은 더욱 꼬였다. 러시아 측은 파손된 가스관을 수리하는데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고 밝혔다. 러시아로선 유럽과 맺은 가스 공급 계약 상의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불가항력 이유’라는 면죄부가 생겼다. 유럽은 허를 찔린 셈이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 ‘미션 11’ 광고 이미지[미션11 캠페인 사이트]

▶샤워는 짧게·운전은 천천히=유럽연합(EU)은 내년 3월 31일까지 가스 사용량을 지난 5년 평균 가스 사용량의 15%를 감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유럽 각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나 하던 전국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에 돌입했다. 일제히 겨울철 ‘실내온도 19도, 취침온도 15도’ 등 생활 속 작은 실천을 하자고 외치고 있다.

캠페인 구호도 다양하다. 네덜란드는 ‘스위치를 돌리자’다. 네덜란드 정부는 가정과 기업이 손쉽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라디오, TV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가령 샤워는 5분 이내에 마치기, 의류 건조기 대신 자연 건조 시키기 등이다.

핀란드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 명칭은 ‘1도 더 낮게’다.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핀란드도 샤워 시간은 5분 이내로 권장하고 있다.

스위스는 ‘에너지가 거의 없다. 낭비하지 말자’를 구호로 내세웠다. 오스트리아는 ‘미션11’이라고 달았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80%로 높은 오스트리아는 샤워 시간 단축 외에도 차량 권장 속도 시속 100㎞ 이하로 달리기, 정기적으로 냉장고 성애 제거하기 등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밖에 프랑스 파리는 에팔탑의 야간 조명 소등 시간을 밤 11시45분으로 1시간 앞당겼고, 옥외 야간 광고도 오전 1시~6시 사이에 금지한다. 독일 수도 베를린은 에너지 사용 10% 절약을 목표로 복도나 계단 실내온도 16도 제한, 공공 수영장 수온 최대 26도, LED 조명 교체 등을 실시한다. 이탈리아는 겨울철 사무실 실내 온도를 1도 낮춘 17도에 맞추고, 난방기는 하루 1시간 정도 끄기를 권장하고 있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는 유럽인들이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동참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네덜란드 여성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5분 안에 샤워를 마치려 했으나 6분 21초가 걸렸다며, 물을 데우는 데만 48초가 걸렸다는 후기를 남겼다. 한 독일 남성은 냉장고에서 성애를 쉽게 제거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새벽 1시까지 밝히던 프랑스 파리 에펠탑 조명은 지난달 23일부 터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밤 11시 45분이면 꺼진다.[신화]

▶정부는 빚내고, 기업에는 으름장=독일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스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가스 가격 상한제를 실시한다. 이를 위해 2000억 유로(280조원)의 추가 부채를 짊어지기로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독일 정부는 에너지 가격 인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는 이제 2000억 유로에 이르는 커다란 방어 우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가스 저장 수준은 최대 저장 용량의 91.5%로 EU 평균(88.2%) 보다 높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스 사용을 20%는 감축해야한다는 게 로베르트 하벡 경제부 장관의 판단이다.

프랑스는 시장 개입에 적극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기업에게 “미친 가격”에 전력 도매 계약을 체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유럽 최대 전력 수출국이던 프랑스에선 원전 노후화로 인한 가동중단, 가뭄으로 인해 전력 요금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8월 26일 기준 프랑스 전력 도매가는 전년 동기 85유로에서 10배 이상 오른 1000유로를 돌파했다. 프랑스 정부는 작년 10월 수준으로 가스 가격을 동결하고, 전력 요금 인상률을 최대 4%로 제한했다. 이 제한률은 내년까지 유지된다.

그런데 정부의 에너지 가격 상한 보호를 받는 대상은 직원 10인 이하, 매출 200만유로 미만 기업으로 제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기업 3분의 2는 정부가 정한 규제 가격이 아닌 자율 도매 시장에서 사고 있다. 정부 조처로는 시장 가격 급등을 막기에 역부족인 셈이다.

프랑스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총 가스 소비량의 15% 정도로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2024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10% 감축을 목표로 내세웠고, 만일 자발적 에너지 절약 운동 동참으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강제 조치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다. 올해는 상반기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한 물량이 있어 그럭 저럭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내년은 러시아 가스 공급이 완전 끊기는 ‘제로(0)’ 원년이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가스 공급처 다변화 노력의 결과로 전체 수입 가스 중 러시아산의 비중은 지난해 41%에서 현재 9%로 낮아지긴 했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타인은 CNBC에 “평소 대로 경제를 운용하면서 EU의 가스 사용 15%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건 힘들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면서도 유럽이 이에 따른 댓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겨울철에 EU는 경제침체에 들어 갈 수 있으며, 이는 저소득 가정과 중소기업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에너지 무기 공격을 유럽 각국이 균일하게 받아내는 건 아니다. 경제 산업 구조가 취약한 국가부터 도미노처럼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슬로바키아는 전력 요금 급등에 경제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며, 유럽연합(EU)에 손 벌리기 시작했다. 인구 550만의 작은 나라 슬로바키아는 에너지 비용이 가계 지출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에두아르트 헤게르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100유로에 샀던 걸 500유로에 사고 있다”면서 만일 내년 전력요금이 메가와트 시(MWh)당 500~600유로에 이를 경우 국가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EU는 전기·가스료 부담 경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부과해 1400억 유로(약 195조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재원이 마련되기도 전에 슬로바키아가 수혜자를 자처하며 선점을 노린 셈이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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