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입금 광고 적발 건수도 증가세
또래간 거래 많아 ‘미등록 대부업’ 규정 한계
“10만원 미만 소액대출도 법정최고금리 적용…단속·처벌 범위 넓혀야”
SNS상 ‘대리입금’ 광고 캡처.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대리입금 빚 18만원, 갚지 않아도 될까요.”
#최근 고등학생 A씨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대리입금’의 문을 두드렸다. 또래 고등학생 B씨에 총 5만원을 대출받은 A씨는 일주일 후 8만원을 상환하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상환일을 지키지 못한 후 발생했다. B씨는 A씨의 신상정보를 담보로 ‘SNS에 채무 사실을 올리겠다’고 협박하며 지각비 10만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감당하기 힘든 채무를 떠안은 A씨가 도움을 청할 곳은 온라인 게시판뿐이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법 소액대출 ‘대리입금(댈입)’이 활개를 치고 있다. 금융당국과 경찰은 피해사례가 속출한 2019년 이후 꾸준히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확산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에 금리 제한이 없는 10만원 미만 개인 간 대출에도 법정 최고금리를 적용해 단속 및 처벌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SNS상 ‘대리입금’ 광고 캡처. |
대리입금 업자들은 주로 SNS나 지인 소개를 통해 고객을 모집하며 ‘5만원 대출에 일주일 이자 3만원’과 같은 고금리 대출을 실행한다. 상환이 연체될 때는 고액의 ‘지각비’를 받기도 하며, 추심 명목으로 폭행 및 협박과 같은 2차 가해도 일으킨다. 예컨대 대출 시 가족의 신상정보를 요구한 후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모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하거나 직접 폭행을 가하는 식이다.
대리입금은 꾸준히 확산세를 보인다. 19일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대리입금 광고는 올해 8월까지 3082건이 적발돼 2021년의 2862건을 이미 뛰어넘었다. 반면 피해 신고 건수는 매년 0~4건 정도로 저조하다. 이에 양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청소년들을 사지로 모는 대리입금 문제에 대해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실행가능한 조치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불법 대리입금 광고에 대해 관계기관에 차단을 의뢰하는 등 꾸준히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피해 신고가 없는 경우 한계가 있다”며 “특히 또래 청소년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등 음성적인 경우가 많아 피해 신고건수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대리입금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만 17세 고등학생이 약 580명의 청소년에 1만~10만원씩 총 1억7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최고 5000%가량의 고금리를 받아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에 적발됐다. 고등학생 친구들끼리 ‘대리입금’한 후 친구가 돈을 갚지 못하자 집을 찾아가 현관문을 걷어찬 고등학생 3명이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의 행태는 불법 사채업과 다를 바 없지만, 단속 근거는 미비하다. 대리입금이 주로 법망을 피해 10만원 미만의 소액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자제한법에 따르면 10만원 미만의 개인 간 금전거래의 경우 별도의 금리 제한이 없어 관련법상 처벌이 힘들다.
물론 대리입금을 지속해서 할 경우 ‘미등록 대부업자’에 해당돼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간 거래와 대부업을 가르는 기준이 확실치 않은 것이 문제다. 한 도산전문 변호사는 “현행법상 미등록 대부업에 해당하려면 이를 ‘업’으로 하며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며 “대리입금의 경우 전문업자가 아닌 또래 간 거래가 많아 개인 간 거래인지 대부업상 거래인지를 명확히 가르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10만원 미만 개인 간 대출에도 금리 제한을 둬 처벌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처벌 규정이 명확지 않다면 개인 간 소액 거래에도 법정최고금리를 둬 이자제한법상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일차적 해법”이라며 “아직 금융 거래에 미숙한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더 확실한 법적 규정을 만들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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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리입금을 막기 위한 이자제한법 개정안은 수차례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개정안이 소위원회에 회부가 된 이후 산적한 문제들 탓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며 “조속히 법안이 통과돼 관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처리를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대리입금의 피해가 발생했을 시 상환을 고민하기보다 주변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환 법무법인 트루메이트 변호사는 “대리입금 관련해 상담하는 이들 대부분 이미 많은 돈을 상환해 회수가 힘들어진 경우가 많다”며 “관련 피해가 인지했을 경우 즉시 상환을 멈추고 법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