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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어공과 늘공

8.16 부동산대책의 후폭풍이 거세다. 정확히 말하면 실망감이 시장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일찌감치 부동산공급대책으로 성격이 규정 지어졌던 이번 대책은 새 정부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감과 함께 상당한 관심이 쏠렸다. 시장에선 재건축 안전진단과 초과이익환수제, 1기 신도시 재건축의 규제 완화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 기정사실화했다. 대선공약은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규제 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일관되게 표출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알맹이가 없었다. 대책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대안을 제시하겠다, 용역을 마무리하겠다 등의 스케줄 제시책에 불과했다. 그렇잖아도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두루뭉술한 대책은 시장의 실망감을 증폭시켰다. 실망을 넘어 민심은 분노로 향한다.

눈여겨볼 대목은 대책 발표 이후 나온 세간의 분석과 평가다. 특히 1기신도시 대책에 대한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용역(22년 하반기 착수)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 추진(24년 중)’의 단 두 줄에 그쳤던 1기 신도시 재정비대책은 공개와 동시에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4년 치러질 22대 총선을 즈음해 여당의 총선공약으로 활용될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었다. 두루뭉술한 재건축 규제완화책에 대해서도 정치인 출신 장관이 혹여라도 모를 집값 자극을 피하고자 방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이 논란을 지켜보자니 고위 공직자 기용의 두 개의 철학이 새삼 머리를 스친다.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 직업공무원)’의 오래된 화두 말이다. 정치인 출신이 다수를 점하는 어공의 최종 종착지는 그들의 고향인 정치권이다. 장관직은 정치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장관직 수행을 무난하게 마치면 정치적 능력에 검증된 행정역량까지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어공은 정책적 어젠다보다는 정책의 대외소통을 중시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해 논란을 낳을 수 있는 정책을 기피한다는 편견에 갇히곤 한다.

‘원현미’라는 말까지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번 대책에 대한 비판 또한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 있는 게 분명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꼽히는, 실세 장관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정으로 탄생한 새 정부의 첫 국토부 장관이기에 시장을 자극할 사소한 단초조차 제공하는 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런 세간의 비판에 원 장관은 어공 특유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정면돌파를 택했다.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깜짝 정책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기보다는 앞으로 5년간 일관된 원칙과 방향성 속에서 예측 가능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깜짝 대책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켜왔다는 그의 진단과 분석은 분명 명쾌하고 합리적이다.

이제 결론은 ‘소신’과 ‘진심’일 듯싶다. 취임 100일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그의 정책적 ‘소신’이 국민에게 ‘진심’으로 전해질 때 원 장관에게 새겨진 어공의 편견이 걷힐 것이다. 국토부 장관 가운데 어공의 성공사례가 많지 않기에 이번엔 꼭 성공한 어공 장관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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