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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이 소녀들’ 보러 대기만 5시간…“연차 내고 왔다” 더현대 무슨 일?[H.OUR]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 대형 스크린에서 뉴진스의 영상이 나오는 모습. 우측에 놓인 파란색 수화기를 들면 멤버들의 목소리가 10대 시절 친구와 나눴던 비밀 대화처럼 흘러나온다. 김유진 기자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8월 어느 한가한 평일 낮,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이하 더현대)'이 들썩였다. 금융가 직장인들은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가 진풍경을 목격하곤 이렇게 웅성였다.

"저게 대체 누구에요?"

신인 걸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민희진의 소녀들’이 더현대를 점령했다. 지하 2층에 선보인 걸그룹 뉴진스(NewJeans)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 얘기다. 더현대에서 신인 아이돌이 팝업 스토어를 선보인 건 뉴진스가 처음이다.

지난달 22일 데뷔한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는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ADOR)에서 처음 선보인 5인조 걸그룹이다. SM엔터테인먼트 출신으로 어도어 수장이 된 민희진 대표가 진두지휘해 탄생했다. 민 대표는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등의 앨범 아트 작업에 참여하며 가수보다 유명한 디렉터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때문에 뉴진스는 데뷔 전부터 '민희진의 소녀들'로 후광효과를 톡톡히 봤다. ‘뭔가 다른 아이돌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동반상승했다. 데뷔 한 달, 그 기대는 현실이 되고 있다. 뉴진스의 데뷔 음반 선주문량이 40만장을 넘어섰고, 음악방송 4관왕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8월 26일 오후 4시, 대기 3시간 만에 입성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 대기 순번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기본 3시간 이상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탓에 입장을 위한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김유진 기자

지난 26일 오후 4시, 대기시간만 3시간 넘게 기다려 입장한 팝업 스토어는 뉴진스의 인기를 증명하듯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평일 낮에도 예외 없이 웨이팅을 감수해야 하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이번 팝업 스토어는 뉴진스와 어도어의 브랜딩을 직접 체험하고 공식 굿즈를 판매하는 공간이다. 뉴진스 로고를 활용한 뱃지, 티셔츠, 에코백, 마스킹 테이프를 비롯해 포토카드 등이 시선을 끌었다. 곳곳에 붙은 ‘솔드아웃(품절)’ 팻말이 공간의 열기를 가늠케 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 진열된 CD플레이어. 레트로와 모던 감각이 어우러졌다. 키치한 스티커가 발랄하다. 김유진 기자

이날 스토어를 찾은 인파는 압도적으로 2030 여성들에 집중됐다. 평균 나이 ‘만 16.4세’인 뉴진스 멤버와 또래들은 학교에 있어야 할 평일 낮 시간, 구매력을 장착한 채 이 공간을 잔뜩 메운 팬들 대다수는 10대 시절을 지나온 2030 여성들이었다.

스토어에 진열된 굿즈들은 2030 여성들이 하교길에 방문한 문방구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아날로그 감성 책받침과 우편 봉투, CD플레이어,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뽑기로 뽑았을 것 같은 키치한 플라스틱 반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고수들이 사랑하는 마스킹테이프, 6공 다이어리 표지에 붙이면 예쁠 법한 홀로그램 스티커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28일 주말 오후 '더현대' 뉴진스 팝업스토어는 오후 3시 예약이 마감됐다. 현장 스태프는 "내방객이 대기등록을 하면 핸드폰으로 알림을 받은 뒤 매장으로 와 줄을 서 입장하는데, 주말에는 평일 보다 2시간 일찍 마감됐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이 공간은 뉴진스의 음악을 소개하는 방식마저 특별했다. 90년대 공중전화 부스를 재현한 파란색 수화기를 들면,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뮤직 비디오 속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온다. 전화를 건 사람과 받은 사람 단 두 명만 들을 수 있는 비밀스럽고 사적인 대화를 연상케 하는 컨셉트다. ‘Hurt’의 멤버별 솔로 버전 음원이 이곳에서 처음 공개됐다는 점도 ‘너와 나만 아는’ 소녀들의 비밀스런 이야기가 생긴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여자 아이돌 성공, 여성 팬심에 달렸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 포토북과 티셔츠, 머그컵 등 굿즈 상품이 진열된 모습. 김유진 기자

불현듯 ‘막내가 2008년생(만 14세)인 뉴진스 멤버들은 이 유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한글 떼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잡았고, 카톡보다 페메(페이스북 메시지)와 유튜브가 익숙한 Z세대 아닌가'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이 성공하려면 여성 팬덤을 키워야 한다”던 민희진 대표의 ‘신의 한수’는 현장에서 그대로 목도됐다.

이날 스토어를 찾은 이지연(29) 씨는 회사에 연차를 내고 왔다고 했다. 이 씨는 “오후 1시에 대기순번을 받은 뒤 3시간을 기다려 4시에 입장했다”며 “직장인에게 소중한 연차인데 서너시간 대기가 기본이라고 들어서 기꺼이 내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희진 대표의 손길이 닿았던 에프엑스도 좋아했다”며 “(뉴진스) 멤버들 평균 나이가 하도 어려서 이 친구들처럼 되고 싶다는 동경심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다. ‘10대’나 ‘소녀’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잔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어딘지 희미하고 나른한 뉴진스를 보면서 향수를 느낀다. 과일처럼 '달고 신' 아이돌이 아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에 유리잔과 뱃지, 에코백 등 굿즈 상품이 진열된 모습. 김유진 깆

또 다른 방문객인 직장인 박수민(31) 씨는 “원래도 에스파, 아이들, 아이브 등 여자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데, 뉴진스는 그중에서도 유독 30대 여성팬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고 평했다.

이어 “역대 여자 아이돌 계보를 보면, 유독 여성팬이 많이 붙는 멤버들이 있다. 에프엑스 크리스탈 같은 이미지. 뉴진스에서는 ‘멋쁨’(멋있고 예쁨)의 정석인 민지, 고양이상인 해린 같은 멤버가 그렇다. 여성팬을 반응하게 하는 민희진의 코드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를 찾은 김상현(28) 씨와 김명근(28) 씨. 이들은 이곳에서 포토카드, 노트보드, 쇼핑백 등을 구입했다. 이들은 각각 1만 5100원과 3만 4100원을 지출했다. 아이돌 굿즈를 위해 써 본 첫 지출이다. 김유진 기자

이날 팝업 스토어에는 소수의 남성 팬들도 속속 목격됐다. 수많은 여성팬들 사이를 뚫고 굿즈를 쟁취한 남성팬들에 이곳까지 발걸음 한 경위를 물었다. 그러자 ‘기본으로 돌아가 편하게 듣기 좋은 음악을 내고 싶었다’던 민희진의 전략이 남자 팬들의 취향도 저격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날 친구와 함께 팝업 스토어에 왔다는 김상현(28) 씨는 “보아 이후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처음일 정도로 평소엔 아이돌에 무관심했다”며 “뉴진스가 그 편견을 깼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사운드에 90년대 힙합이 묻어난다. 음악적으로 1990년대 미국의 3인조 R&B 걸그룹인 TLC나 솔트 앤 페파(Salt-N-Pepa)를 연상시킨다”며 예찬론을 펼쳤다.

25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뉴진스 팝업 스토어. [김유진 기자/kacew@]

동행한 김명근(28) 씨는 “우선 음악이 유치하지 않다. 캐주얼 식당에 틀어놔도 어색하지 않다”며 “미국식 덮밥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장에도 종종 틀어놓는다”고 덧붙였다.

뉴진스의 데뷔를 기념해 문을 연 뉴진스(NewJeans)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는 이달 31일까지 열린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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