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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최고금리를 ○%P 낮추면...
고금리 시대 금융기관 ‘딜레마’
대출금리 법적허용치 최고 20%고정
기준금리 인상에 조달비용 부담 증가
카드 등 2금융 수익 감소에 대출 축소
법정최고금리 2%P 인하땐 66만명
4%P땐 108만 취약계층 대출 막혀
“논의 지속 필요...지원책 병행해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2금융권의 조달금리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가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상승하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받던 가구들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 주로 취약계층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시장에 참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다중채무자인 상황인 만큼 현재 논의가 일고 있는 법정최고금리 인하가 실제 법제화되더라도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부터 마련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금융기관 조달비용 증가=22일 금융권에 따르면 2022년 6월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기준금리는 1.25%포인트(0.5%→ 1.75%) 인상됐지만, 카드채·기타금융채(AA+, 3년물)의 금리는 같은 기간 동안 기준금리 인상폭의 2배가 넘는 2.65%포인트(1.8% →4.45%) 상승했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금융기관이 가계와 기업에 대출을 하기 위해 조달하는 자금의 금리, 즉 조달금리가 상승한다. 특히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대출을 취급하는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등 고금리 업권의 조달금리는 기준금리에 비해 빠르게 상승한다.

이처럼 시장금리에 따라 금융기관의 조달금리는 변동하는 반면, 대출금리에 대한 법적 최고 허용치인 법정최고금리는 20%로 고정돼 있다. 지금과 같이 조달금리가 상승하면 법정최고금리조달금리 스프레드(금리차)가 감소하고, 그 결과 법정최고금리와 근접한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던 가계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

특히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차입하고 있는 가구’가 주로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부각된다. 취약가구를 ‘소득 2분위 이하’ 혹은 ‘신용평점 하위 20%(700점) 이하’인 가구로 정의했을 때, 2022년 6월 기준 금리가 4% 이하인 저금리 신용대출 이용 가구 중 취약가구의 비중은 8.9%에 불과한 반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고금리(18~20%) 신용대출 이용 가구 중에서는 취약가구의 비중이 84.8%에 이른다.

따라서 조달금리가 인상되면 소득수준이 낮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가구가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들 중 약 절반 가까이가 다중채무자임을 고려하면, 롤오버(roll-over, 대출 만기 시 새 대출을 받아 만기를 연장) 제약으로 인해 타 금융권으로 연체가 파급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법정최고금리 인하 시 최소 66만 차주 대출길 막혀=법정최고금리 제도는 금융기관의 시장지배력(market power) 남용을 방지하고 대출시장에서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부업법)’이 2002년 10월에 제정될 당시 법정최고금리는 시행령에 따라 66%로 결정됐다. 이후 시행령이 7차례 개정됐고, 현행 법정최고금리는 20%이다.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법정최고금리 수준과는 큰 격차를 보이므로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 반면 고금리 업권인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중 일부는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를 부과한다.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일부 가구, 특히 법정최고금리 상한에 근접한 금리를 지불하던 가구의 대출금리가 인하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런 가구는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가구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취약가구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던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등에서는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됨에 따라 더 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가계에 대한 대출 공급을 거부하게 된다.

특히 채무 불이행 확률이 높은 가계들에 공급하던 대출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의 채무 불이행 확률이 더 높으므로,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 법정최고금리를 2%포인트(20% → 18%) 인하하면 2021년말 기준으로 카드·캐피털·저축은행 신용대출을 받고 있는 약 65만9000명의 차주들은 법정최고금리 인하로 인해 더 이상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던 차주들이 법정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더 이상 금융기관에 수익이 되지 않아 대출이 거부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다.

법정최고금리가 2%p(20% → 18%) 인하될 때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나는 차주들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및 기타대출까지 모두 합한 금액은 33조2000억원에 이른다.

법정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취약가구의 롤오버가 제한되고 정책금융, 대부업, 혹은 비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지 못하면서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 법정최고금리의 인하폭이 커짐에 따라 대출이 거절되는 차주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한다. 법정최고금리가 4%포인트(20% → 16%) 인하되면 약 108만4000명의 차주가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난다. 이들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및 기타대출까지 모두 합산한 잔액은 약 55조3000억원에 이른다.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법정최고금리가 2%포인트 인하될 때 소비자 후생의 변화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평균적으로 차주 1인당 한 달에 약 5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는 법정최고 금리 인하로 대출금리가 인하되는 차주들의 소비자 후생 증가폭에 비해 시장에서 배제되는 차주들의 소비자 후생 감소폭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법정최고금리 논의와 취약계층 지원책 병행해야=가파른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과 주요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 등으로 불가피하게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향후 2금융권의 조달금리는 더욱 상승할 것이고, 법정최고금리가 시장금리에 연동되지 않는다면 취약가구의 2금융권 대출시장 배제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2021년에 법정최고금리 인하와 동시에 발표된 정부의 후속조치가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정부는 법정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후속조치로 정책서민금융 확대, 대부중개 수수료 상한 인하, 중금리 대출 개편 등을 내세웠다. 그 중 특히 ‘햇살론17’의 금리를 인하하고 20% 초과대출 대환상품을 한시적으로 공급하는 정책은 조달금리 인상으로 인한 취약가구의 대출시장 배제 현상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

금리 인상기에 상환부담 증가로 필수적인 소비가 제약되거나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을 선별해 저금리 정책금융을 공급하는 등 재정을 통한 보조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조달금리는 시장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크므로, 조달금리의 변동에 따라 추가로 대출시장에서 배제되는 차주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금융을 통해 조달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이유이다.

특히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대출을 받는 가계는 주로 소득수준이 낮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계층임을 고려할 때, 법정최고금리를 시장금리와 연동함으로써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계층의 롤오버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시장금리와 법정최고금리의 스프레드를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시장에서 차입할 수 있는 가구의 범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과도한 상환부담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가구는 정책금융 혹은 재정정책을 통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구체적인 대책으로 만기연장을 통한 월상환부담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

홍콩과 이탈리아는 금리 인상기에 취약가구의 월 상환부담을 축소하기 위해 대출의 만기를 연장하는 가변만기대출을 도입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월 상환부담 증가에 따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가변만기대출 상품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동형 법정최고금리 제도의 도입과는 별도로 적정 법정최고금리 수준에 대한 논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며 “법정최고금리 수준별로 대출시장에서 배제되는 취약가구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정 규모의 정책서민금융 예산을 사전에 편성해 취약가구를 보다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태형 기자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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