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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영규의 현장에서] 美-中 사이 낀 韓반도체기업, 해법은?

동북아시아 정세가 다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오랜 패권 다툼의 여파가 이번에도 여름 한철 태풍처럼 몰아칠 기세다.

과거 세계대전의 전쟁 양상은 이제 경제대전으로 변화했다. 반도체산업은 경제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분쟁지역이 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불렀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세기 편자의 못’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산업 분야다.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하지만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경제전쟁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산업을 보호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14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미세공정 제조장비 수출 제한 확대, 반도체 동맹 강화 등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실행 중이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 등 4개국 반도체 동맹인 ‘칩(Chip) 4’ 추진에 이어 일본과 지난달 29일 미·일 경제정책협의위원회를 통해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에 쓰이는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원료공급망을 구축하고 중국을 견제하기로 했다. 대만도 칩 4 참여를 결정했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중의 힘싸움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은 이달 말까지 동맹 참여 여부를 알려달라며 한국을 압박했다. 중국은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저지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추스바오는 “한국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 ‘노(no)’라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볼모로 삼았다. 지난 문재인 전 정부 시절 약속한 ‘사드(THAAD) 3불’의 이행까지 거론하며 외교적 압박을 가했다.

불안한 것은 반도체산업을 최전선에서 이끌어가는 기업들이다. 정부는 이해득실을 따져 실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반도체기업들은 과거 사드 배치 이후 유통업계의 중국시장 철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각국 정부는 물론 우리 정부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업계로서는 그저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칩 4에 대해 “정부에서 잘 다룰 것이다. 유리한 쪽으로 선택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핵심 전략산업이다. 정부가 ‘유리한 쪽’을 선택하겠지만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방향이 돼서는 안 된다. 미국, 일본, 대만과 협력과 경쟁 사이 미묘한 관계에서 경쟁에 뒤처지는 결과가 나와서도 안 된다. 어설픈 ‘실리외교’도 위험하다.

둘 다 선택하기 어려워 기회비용이 생기는 난제다.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명제가 있다. 반도체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반도체 주권을 잃으면 산업의 근간을 잃게 되는 셈이다. 단기보다 먼 미래의 득실까지도 따져야 한다. 민·관 협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모래주머니’를 벗겨줘야 할 정부다. 현명한 솔루션을 기대해본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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