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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밍 절묘한 ‘도어스테핑 없음’…정체성 흔든 대통령실
외부일정·휴가로 12일간 생략…대통령실 “오해 없길”
직책 떼고 비난한 ‘김정은 경고’에도 대응할 기회 놓쳐
尹대통령 기다리던 취재진에 “매복한다”는 대통령실
‘소통’ 의미 스스로 져버려…한동훈 “불편한 질문 받아야”
권성동 직무대행 사퇴…“대통령만큼은 사적대화도 조심”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대국민 소통’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진행해온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흔드는 주체는 다른 이도 아닌 대통령실이다.

윤 대통령의 마지막 도어스테핑은 지난 26일이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쿠데타’ 발언에 대해 “이 장관의 표현은 아마 (치안관서장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 아닌가 생각이 된다”,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라고 밝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대선 때부터 오염수 처리 문제는 주변 관련국들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을 끝으로 향후 12일간 출근길 문답은 볼 수 없게 됐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이른바 “내부총질” 문자가 공개된 후 윤 대통령이 27~29일 첫 일정이 외부에서 개최되면서 청사 출근을 하지 않은데다 30~31일은 주말, 이어 한 주간 휴가를 떠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오해가 없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할 정도로 타이밍은 절묘했다. 27일 분당 서울대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트에서 개최된 제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나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정조대왕함 진수식은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었다.

다만 29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교육부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었으나,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기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휴가철에 접어든 시기를 감안해 새롭게 추가된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자사태' 이후 사라진 도어스테핑…'김정은 경고'에도 직접 말할 기회 없어져

정국을 뒤흔든 윤 대통령의 문자가 보도된 것은 26일 오후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이 열리는 시간,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휴대전화 화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텔레그램 대화방은 ‘대통령 윤석열’, 내용은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였다.

대통령이 사적으로 보낸 문자가 언론에 공개된 초유의 사태다. 상대가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인 점도 특기할만하다. 내용 면에서도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을 때도 윤 대통령은 “당무에 대해서 어떤 언급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7월8일 출근길)고 밝힌 것과 달리, 이 대표를 향한 불편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자를 보낸 주체인 윤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용산에는 마침 ‘도어스테핑’ 제도가 있다. 그러나 취재진은 정작 ‘대국민 소통 창구’를 통해 물어볼 수 없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대남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27일로,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자’ 등 표현으로 우회하지 않고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생략한 채 직접 윤 대통령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윤 대통령이 직접 이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다.

2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영범 홍보수석이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간 문자 대화가 언론 보도를 통해 노출된 것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청사 출근’ 기다리던 취재진에 “매목한다”한 대통령실…‘소통’ 의미 져버려

이번 사태로 대통령실이 ‘대국민 소통 창구’라고 자평했던 출근길 약식회견 의미를 스스로 져버린 모습도 드러났다.

일부 대통령실 취재진은 문자보도 직후인 26일 오후, 외부일정을 마치고 청사로 들어오는 윤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도어스테핑이 진행돼온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는 언론계, 특히 정치부에서는 흔한 취재 기법이며 다른 부처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급히 브리핑을 열었다. 그는 “여러분이 갑자기 대통령 외부행사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이를테면 ‘도어스테핑’ 형식을 빌려서, 이를테면 ‘엠부시’(ambush·매복) 취재를 하시겠다고, 그건 온당치 않은 것 같아서 양해해주십사 하고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도어스테핑은 인터뷰를 꺼리는 취재진의 문간(Doorstep)까지 찾아가 집요하게 묻는 취재 기법을 뜻한다. 외교가에서는 주로 회담 장소로 향하는 길이나 회담이 끝나고 차를 타는 길 등 정식 회견 이외의 상황에서 격식없이 질문을 받는 형식을 통칭한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실이 명명한 것으로, ‘출근길 약식회견’이라고 해석이 붙는 것은 통상 출근길에 해왔기 때문이지 사전에 취재진과 논의한 것은 아니다.

‘출근길’에만 행하는 행위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26일은 윤 대통령이 외부 일정을 마치고 청사로 ‘첫 출근’하는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청사에 출근했다. 문제는 홍보수석이 취재진의 취재 행위에 대해 “매복했다”고, 이를 “온당치 않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하고 싶을 때만 할 수 있는 도어스테핑으로 스스로 만든 셈이다. 최 수석은 SBS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정치부와 사회부 기자를 두루 거쳤다.

윤 대통령의 ‘복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6일 업무보고 후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는 언론으로부터 불편한 질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즉답하든, 답을 안 하는 것도 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서로 간에 소통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공식화하고 투명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31일 직무대행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직무대행직을 맡은 지 23일 만이다. 배현진, 조수진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으로 향하는 수순이다.

이 모든 혼란의 발단은 대통령과 당대표 직무대행 간의 ‘문자’에서 시작됐다. 온라인에서는 성향을 막론하고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내용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층에서는 “앞에서는 안 한다고 해놓고 뒤에선 하고 있었다니”라는 의견이, 중도보수층에서는 “대통령만큼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조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 제공.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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