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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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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그림,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그림,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그림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앙리 루소, 꿈, 1910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 정글 그림? 당연히 가봤으니 그릴 수 있지! 넓적한 잎을 주렁주렁 단 낯선 식물, 긴 송곳니를 갖고 따라오는 야생 동물, 활활 타오르는 태양, 미지의 여인….

그런 곳을 몸소 탐험했소. 퓨마와 같이 달려본 적 있나? 폭포에서 악어와 샤워해본 적은?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직접 얻어본 적도 없소? 하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 물론 정글에서 죽을 뻔한 적도 셀 수 없이 많소.

내 숙적은 재규어였소. 몇 날 며칠 내 그림자를 밟더라고. 눈만 마주치면 군침을 질질 흘리더군. 우린 치열한 사투 끝에 친해졌소. 서로 실력을 인정한 셈이지! 나는 녀석에게 '웰링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가까워지니 송곳니를 감추고 애교를 부리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믿을 수 없을 거요.

언젠가는 식인종도 만났어. 수십 명이 전부 다 백골 목걸이를 하고 있었소.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던 나는 팔다리가 묶인 채 죽을 날을 기다렸어. 그런데 아 글쎄! 그쪽 추장 딸이 나한테 홀딱 반했지 뭐요. 모두 곯아떨어졌을 때 살금살금 다가와 나를 풀어줬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읽을 수 있었소. 우린 그렇게 작별의 입맞춤을….

잠깐. 우리가 무슨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신나게 말을 하던 이 화가가 머리를 긁적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그림 '꿈'에 대해 여쭤봤잖아요. 그림 속 정글을 이렇게나 개성 있게 묘사할 수 있는 노하우요."

그를 인터뷰하고 있는 기자가 웃으며 다시 묻습니다. 오른손이 작은 수첩 위에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 시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혹시 멕시코 정글에 가본 적 있소? 기가 막힌다오. 다른 세상 같다니까. 나 때는 말이오. 특출난 병사들만 그런 곳에 파견 갈 수 있었소. 힘이 좋든, 총을 잘 쏘든, 한 분야만큼은 일등을 해야 갈 수 있었다는 거요. 나? 나는 그러니까…. 참호를 기가 막히게 팠어. 아버지가 잘나가는 건축가였다오. 딱히 배운 적 없는데도 귀족 침실처럼 만들었지!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법이야. 하하!"

"선생님. 그간 하신 말 다 진짜예요? 외람되지만, 선생님의 정글 탐험 이야기가 지난주랑 약간 달라진 듯해서요."

기자가 조심스럽게 질문합니다. 이 화가는 놀란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뜹니다. 잠시 정적이 감돕니다. 크흠…. 화가가 목을 가다듬습니다.

"우리….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나?"

이번에는 화가가 물어봅니다. 눈치를 봅니다. 유쾌한 어투는 사라졌습니다.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입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연 선생님 초청 행사에서 했죠. 거나하게 취한 선생님이 그때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정글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요. 그땐 재규어한테 '웰링턴'이 아닌 '오클랜드'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친해진 뒤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참호 이야기는 없고, 저격수 제의를 받을 만큼 총을 잘 쐈다고…. 그 말씀이 너무 재밌어서 제가 이날 인터뷰를 청했는데, 그건 기억하시죠?"

"흠, 흠! 물론 기억하고말고. 내가 엄청나게 취했었지! 그래서 기억에 혼선이 있었나 보군. 음…. 어느 부분이 달랐다고? 하하!"

다 뻥이구나.

이쯤 되니 기자도 눈치챕니다. 하지만 이미 이 화가의 천진난만한 매력에 푹 빠진 상태였습니다. 표정이 너무 순진합니다. 겉모습만 노인네일 뿐, 어린아이 같습니다. 허풍을 떠는데도 밉지 않습니다. 사실, 원래 특이한 사람인 걸 알았기에 충격도 없었습니다.

기사 쓰기는 포기합니다. 그냥 함께 놀기로 합니다. 그의 요란스러운 거짓말과 함께 종일 어울립니다. "선생님은 참 재밌어요. 그래서요? 정글 이야기 좀 더 해보세요. 이 특이한 정글 그림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고요."

이 귀여운 거짓말쟁이 화가의 이름은 앙리 루소(1844~1910)입니다. 그간 다룬 화가 중 괴짜로 단연 1등 자리를 넘볼 사람입니다. 이 정도 특이함은 품고 있어야 하는 듯도 합니다. 근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되려면요.

이 정글, 현실인가 환상인가
앙리 루소, 꿈(일부 확대), 1910

정글입니다.

하얀 달빛 아래 깔린 원시림입니다. 온갖 종류의 녹색이 눈길을 끕니다. 열대림은 초록색으로 빈틈없이 빽빽합니다. 실제로 이 그림이 쓰인 녹색류 물감만 50여 개입니다. 오크, 라일락, 유칼립투스, 산세비에리아, 바나나 나무 등 각자의 초록 기운을 품은 식물들은 꽃과 잎, 열매를 달고 빳빳하게 섰습니다.

앙리 루소, 꿈(일부 확대), 1910
앙리 루소, 꿈(일부 확대), 1910
앙리 루소, 꿈(일부 확대), 1910

그 사이사이 기묘한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왼쪽 위에 금색과 은색 털을 가진 새가 있지요. 귤색 열매가 달린 나무에도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거기서 왼쪽 밑을 보면 코끼리가 수풀 사이에서 고개를 쑥 내밉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사자 한 쌍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코를 킁킁댑니다. 주황색 뱀은 구불대며 춤추듯 몸을 비틉니다. 잘 보면요. 사자 뒤에 피리를 든 원주민이 서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 위를 보면 검은색 원숭이 한 마리가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그리고 한 여인.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 붉은색 소파에 누워있습니다. 희미하지만 웃고 있는 듯합니다. 벌거벗은 채 두 다리를 포갰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슷합니다. 사실 이 그림이 묘사하는 곳은 루소의 옛사랑인 야드비가(Yadwigha)의 꿈속입니다.

'야드비가는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있습니다. 땅꾼이 피리를 부는 소리를 들었지요. 달은 꽃들과 푸릇한 나무를 비춥니다. 뱀은 피리의 아름다운 소리를 즐깁니다.' 루소가 작품 제목 옆에 손수 쓴 시입니다.

즉, 여인이 소파 위에 누운 것까지만 진짜입니다. 주변 정글과 동물 등은 환상 속 풍경입니다. 이 정글이 실제로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겁니다. 앙리 루소의 작품 '꿈'입니다.

이성의 검열 없이, 관습의 참견 없이

앙리 루소는 근대 초현실주의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화가입니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말한 초현실주의 꿈나무들이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한 사람이 루소입니다. 초현실주의 회화란 현실을 뛰어넘은 무의식의 초(超)현실을 그리는 화풍입니다. 재미있는 상상부터 춥고 배고플 때 본 허상, 술에 취해 비틀대다 마주한 환상, 어젯밤에 꾼 끝내주는 등을 이성의 간섭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겁니다.

가령 꿈에서 볼링공만 한 파란색 오렌지를 봤고, 이게 뇌리에 박혔다면요. 실제로 그렇게 생긴 오렌지가 있든, 없든 그냥 그리는 겁니다. "이봐, 이런 오렌지가 세상에 어디 있어?"라는 말이 들리면 "내 꿈에서 봤는데!"라고 받아치면 되는 겁니다.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주술사

루소가 근대 초현실주의자의 아버지가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정글을 줄기차게 그린 루소는 사실 정글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짜로 발 한 번 디딘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화가였습니다. 야생 사자나 코끼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원주인과 어떤 교감도 한 적 없었습니다. 루소가 그린 건 환상 속 정글입니다. 그냥 자기 상상대로 표현한 겁니다. 루소는 정글을 그리기 위해 프랑스 파리 식물원과 잡지, 어린이 그림책 등을 참고했습니다. 정글 속 동물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된 박제 동물을 보고 표현했습니다.

앙리 루소, 호랑이와 버팔로의 싸움

당연히 이렇게 '깔끔한' 정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라의 여인과 빨간 소파가 생뚱맞게 등장할 일도 없습니다. 사자가 이 좋은 먹잇감 앞에서 토끼 눈을 뜬 채 멈칫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루소의 그림에는 분명 현실적인 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몽상적인 부분이 다분합니다. 정글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나올 법한 만화 속 세상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입니다. 그 시대 평범한 화가였다면요. 정글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정글부터 직접 가고 ▷거기에 사는 동식물을 꼼꼼하게 관찰한 뒤 ▷표현 기법이야 어쨌든 현실적인 그림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루소의 이런 기행(奇行)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세계의 열쇠가 됩니다.

루소가 활짝 연 이 세상에 발을 디뎌보니 이성의 검열, 관습의 참견 따위 없는 '프리덤' 뉴 월드였습니다. "저 정글이 늙다리 화가의 상상이야? 어디 신화나 성경의 한 구절 아니야? 자기 머릿속 환상을 저렇게 뭐라도 되는 양 그린다고?"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초현실주의가 덮치기 전 이성의 시대에선 루소는 조롱의 대상이었지요.

그간 회화는 실재(實在)하거나 적어도 실재할만한 걸 그리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신화나 종교 등 극히 일부 주제에만 상상력을 넣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그림이나 예수 얼굴은 비슷하듯 한계는 뚜렷했습니다.

루소를 시작으로 이성의 사슬을 벗어던진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양 그려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곳은 아니고 그냥 내가 상상해본 세상인데…. 근데 내가 이런 걸 그려도 돼?", "어휴, 그리스·로마 신화는 무슨. 내가 꿈속에서 본 괴물이야. 재밌긴 하겠는데, 내가 뭐라고 이걸 그려…."라는 생각을 뒤로 밀어냅니다.

르네 마그리트, 겨울비, 1953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더 나아가 능청스럽게 평범한 사람들을 하늘에 막 띄워보고, 멀쩡한 시계를 끈적하게 녹여도 봅니다. "에이, 저런 걸 어디서 볼 수 있어?"라는 말이 또 나오면 "내 무의식에서 봤는데!"라고 재차 받아치면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추상회화와 초현실주의는 모델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화풍 모두 진짜 두 눈보다 '마음의 눈'에 기댔습니다. 다만 추상회화가 화폭에 딱히 대상을 그리지 않았다면(이들은 '필'에 따라 선을 죽죽 긋고 색을 채우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시치미 뚝 떼고 조금 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려고 한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회화만이 갖는 특유의 ‘감성’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루소의 또 다른 대표작 '잠자는 집시'입니다.

초현실주의 회화만이 갖는 특유의 감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집시 여인이 모래사막에 누운 채 잠들었습니다. 동양풍 옷을 입었는데 딱히 비싸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 손에 투박한 지팡이를 쥐고 있습니다. 이불도, 신발도 없습니다. 만돌린과 질항아리 물병이 다입니다.

그 옆에는 사자 한 마리가 있습니다.

사람 한둘은 가볍게 찢는 사자인데, 이 여인을 잡아먹을 생각은 없는 듯합니다. 외려 잠든 여인을 걱정하는 듯합니다. 잘 살아있는지 알아보려는 듯 얼굴 쪽에 코를 댄 상태입니다. '제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 해도, 지쳐 잠든 먹이 앞에서는 망설인다'는 부제 덕에 더욱 유순하게 느껴집니다.

사막 뒤로 강이 흐릅니다.

그 너머로 민둥산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푸른 하늘 위로 흰 보름달이 창백한 빛을 내려보냅니다.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일부 확대)

짐작하겠지만 루소는 사막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이 또한 머릿속 상상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을 뿐입니다.

감상자는 상식이 무너진 루소의 꿈속으로 쑥 들어온 셈인데요. 몽롱한 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비로운 기운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초현실주의 회화가 아니고선 푹 젖을 수 없는 독특한 감정입니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도 이 그림을 본 뒤 "본능적인 감각이 이끄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그린 환상적인 그림이다!"라고 칭송했습니다.

루소도 이 그림이 뿜어내는 신비한 오라(aura)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고향 시장에 직접 편지를 쓰고 "이 그림을 1800프랑에 팔겠소!"라며 선심 쓰듯 제안합니다. 전설의 화가 폴 세잔과 파블로 피카소가 한 달 생활비로 125~150프랑쯤 쓰던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아무런 답장도 못 받았습니다.

지금껏 이런 화가는 없었다
앙리 루소, 나 자신

이 양반은 방구석 탐험가야?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쯤 되면 루소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집니다.

끝없는 허풍, 무한히 샘솟는 자신감을 보면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건 확실한 듯한데요. 아니었습니다. 사실 루소는 40대가 된 후에야 제대로 붓을 쥔 늦깎이 화가입니다. 돈도 없고, 집안도 그저 그랬습니다. 심지어 사고를 치고 법정에 들락날락하는 등 비행(非行) 기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루소를 아낀 사람들은 "그가 불쌍하다", "한심하긴 한데 밉지만은 않다"며 감싸줬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랬을까요.

앙리 루소, 바위 위 소년

루소는 1844년 프랑스 북부의 소도시인 라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루소는 아버지가 투기로 전 재산을 날린 뒤 가난을 처절하게 맛봅니다. 돈도, 여유도 없던 루소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웁니다.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푼돈을 법니다. 루소가 좋게 말해 허풍쟁이, 나쁘게 표현하며 사기꾼 기질을 품게 된 이유는 이런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난, 정규 교육을 못 받은 콤플렉스 탓에 자기 포장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루소는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취업 전선에 뛰어듭니다.

루소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그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맙니다. 충동을 못 이기고 슬쩍한 겁니다. 당시 루소는 군 면제였는데요. 이 일이 커질까 봐 겁을 먹고 자원입대합니다. 당연히 군 생활 중 멕시코로 파견 간 적은 없었습니다. 군악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루소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가족 부양을 위해 제대합니다. 루소는 1868년 가족을 데리고 파리에 옵니다. 파리시 세관원이 됩니다. 말이 세관원이지, 파리로 들어오는 물품에 세금을 매기는 게 전부였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말단직이었던 겁니다.

루소는 파리의 소시민이 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삶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나 봅니다. 이제 그는 위대한 항해에 나섭니다.

조롱·비난에도…늦깎이 화가, ‘불꽃남자’였다
앙리 루소, 세브르 다리에서 바라본 광경

위대한 항해라지만, 시작은 돛단배 수준이었습니다.

루소는 40살 무렵부터 붓을 듭니다. 스스로 미술 재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다른 과목의 성적이 '보통'일 때 미술상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1886년 당시 신진 화가의 등용문인 '앵데팡당(Indépendants·프랑스 독립미술가협회 주최 파리에서 열리는 미술 전람회)'에 그림을 냅니다. 매해 출품합니다. 하지만 루소 그림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루소는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모든 면에서 서툴렀습니다. 색도 특이했고, 원근법도 어색했습니다.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3프랑으로 기분 전환하기 좋은 그림" 정도가 고상한 비판일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루소를 세관원이라는 뜻의 '두아니에'라고 놀립니다. 일요일에만 붓을 드는 아마추어라며 '일요화가'라는 별명을 붙여 조롱합니다.

루소는 좌절했을까요.

그럴 리 없지요. 루소는 22년 세관원의 삶을 내려놓고 49살부터 전업 화가가 됩니다. 그림 좀 그만 그리라고 모욕을 줬더니 "응, 더 열심히 할게!"라고 화답한 셈입니다.

루소는 앵데팡당 등에 계속 작품을 냅니다.

이 덕분에 유명해지기는 했는데요. 좀 이상하게 유명해집니다. 못 만든 영화가 외려 '밈'이 돼 주목(?)받는 일이 있는데요. 루소의 그림이 그랬습니다. 앵데팡당 관계자 중에는 머리를 싸매며 "또 이 인간이야. 제발 그림 좀 그만 내라고 해!"라고 울부짖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가끔 그런 루소에게 초상화를 부탁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화가는 화가였거든요. 하지만 루소의 인물화는 실제 모델과 닮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주문자도 완성작을 본 뒤 "정말 미친 화가였네"라며 받기를 거부하거나 찢어서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앙리 루소,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루소는 불꽃 남자였습니다.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였습니다. 온갖 악평을 견딥니다. 이쯤 되면 타격을 입기나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루소는 1900년대 초부터 집중적으로 정글을 그립니다. 왜 정글에 꽂혔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긴 게 아닐지 추측할 뿐입니다.

자신이 처한 유쾌하지 않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글을 그리며 현실도피를 꾀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루소는 "이국의 낯선 식물을 보면 꿈을 꾸는 기분이 든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루소는 1905년에 드디어 전시 자격을 따냅니다.

마침내 비평가들이 루소의 작품을 눈여겨봅니다. "원시인의 그림 같다"던 악평 대신 "소박함이 있다"는 호평, "손을 안 대고 그린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하다"는 조롱 대신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그린 그림"이라는 칭찬이 나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의 그림도 재평가받는 시대가 온 만큼, 이 이상한 양반의 괴작도 다시 한번 보자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의 환상 속 세계에 이끌리고 만 겁니다.

세잔을 발굴한 화상 볼라르가 루소의 그림을 삽니다. 이러면 '게임 끝'이었습니다. 루소는 그제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양 흐뭇하게 웃습니다.

피카소가 연 ‘루소의 밤’, 그가 경악한 사연
앙리 루소,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루소 추종자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피카소입니다.

두 사람과 관련해선 한 일화가 있는데요.

돈이 없던 청년 피카소가 길거리 좌판에서 그림을 덧그릴 수 있는 재활용 캔버스를 구하던 중 루소의 옛 그림을 봅니다. 루소가 초상화를 그려줬는데 당사자에게 퇴짜 맞은 그림이었거나, 앵데팡당에 낸 무수한 그림 중 하나였을 겁니다.

혁명가는 혁명가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전시장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이 그림이 품은 파격에 혼을 쏙 빼앗깁니다. 수소문 끝에 루소를 찾습니다. 40살가량 나이 차가 나는 할아버지와 손자뻘의 두 화가는 곧장 우정을 꽃피웁니다.

피카소는 1908년에 루소를 위한 연회도 엽니다. 이른바 '루소의 밤'입니다.

자신의 파리 작업실에 루소의 그림을 걸어두고 친구들을 초대합니다. 작업실은 루소의 그림 속 정글처럼 갖은 녹색 잎으로 꾸민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왕'을 등장하게 합니다. 루소는 왕관을 쓴 채 그를 위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우리 둘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들이지요. 피카소는 이집트 스타일에서 최고고, 나는 현대 스타일에서 최고입니다!"

기분 좋게 취한 루소의 한 마디에 현장은 웃음으로 가득해집니다. 괴짜 늙은이의 귀여운 허풍으로 본 겁니다. 피카소와 몇몇만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사람,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예술 그 자체가 피해를 봅니다!”…“뭐라고?”
앙리 루소

하지만 루소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루소는 피카소 주최의 '루소의 밤' 이후 2년 뒤인 1910년에 병을 얻습니다. 그 해 66세 나이로 결국 눈을 뜨지 못합니다. 이제 막 유명해질 수 있었는데요. 파란만장한 삶과 견줘볼 때 끝은 허무했습니다. 당시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았던 처지여서 장례식에 온 사람도 겨우 7명이었습니다.

한창 그림을 내지르던 루소가 한 번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루소가 그때 재판관과 나눈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 된 점도 흥미롭습니다.

"재판관님! 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면 누가 제일 피해를 본다는 거요?" "예술이요. 예술 그 자체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참고 문헌〉

1일 1미술 1교양 2: 사실주의~20세기 미술, 서정욱, 큐리어스

〈후암동 미술관 읽는 순서(연재 중)〉

①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②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③‘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④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⑤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⑥“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⑦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⑧“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⑨‘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⑩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⑪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⑫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⑬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⑭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2022.7. 23.)

⑮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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