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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고도 먼 한·일...온탕이냐, 냉탕이냐 또 기로 [헤럴드 뷰]
뒤돌아본 양국관계...향후 전망은
韓, 관계 개선 의지 강해...日은 반신반의
아베 이후 韓 손내밀면 정반대 진행 양상
한미일 안보동맹 구도 ‘양국 접근’에 도움
박진 18일 방일...기시다 면담 여부 주목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최근 아베 전 총리 변고 이후 달라진 양국 정세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맞게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는 데다 때마침 일본에서는 참의원 선거가 끝나 정치적 부담을 덜어 관계 복원의 기회가 왔다는 점에서다.

일본 NHK, 지지통신은 지난 14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일본 도쿄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과 회담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국 외교장관의 일본 방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닥치기 전인 2019년 11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박 장관이 18~20일 일본에 머무르는 기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면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고 일본 매체들이 소개했다. 양국 외교 장관 회담에선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 강제징용 문제 등 현안을 둘러싸고 대화의 진전을 도모할 수 있을 지가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우리가 앞서가는 분위기가 읽힌다. “일단 만나야한다”는 우리 정부의 ‘톱다운(하향식)’ 외교 의지와 달리 일본 정부는 현안부터 풀어야한다는 ‘보텀업(상향식)’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일본 보수 언론들은 한국의 외교 관계 개선 의지에 ‘반신반의’로 여기는 분위기다. 일본 국방·외교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우선 순위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 뵌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 지 정확히 알아야하는데, 일본은 (지금을)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JP·36·왼쪽) 중앙정보 부장이 일본 외무성에서 오히라 마사요시(52) 외상과 회담하고 있다. 이날 협상에서 3000만 달러로 시작한 청구권 협상 금액이 ‘6억 달러+알파’까지 올라갔다. [김종필 자서전]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도쿄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냉·온탕 반복...잦은 ‘뒷통수’에 구조적 불신=양국 관계는 식은 지 오래로 상호간에는 근본적인 과거사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해방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한일은 우호 협력 관계이다가도 과거사와 역사인식을 두고 틀어지기를 반복했다. 특히 정권 초반 좋았다가 후반에 정권 유지를 위해 반일(反日), 반한(反韓) 감성에 기대는 일이 잦았다.

전두환 정권 때도 그랬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 총리가 일본 총리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고, 이듬해 전 전 대통령의 답방 때 히로히토 일왕이 한국 침략 역사에 유감을 표명하는 등 한일 관계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1985년 나카소네 총리는 전후 총리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의 반발을 샀다. 1990년대 들어 일본에서 반성적 역사인식을 담은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됐고, 한일 관계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도 ‘한·일 합방은 적법하게 체결됐다’고 발언해 한국을 자극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경고가 오래도록 회자됐다.

김영삼 정권 말기 악화했던 양국 관계는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맺은 ‘21세기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급해빙됐다. 이 선언 이후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일 공동월드컵 개최 등이 이어지며 양국 문화 교류가 번성을 이뤘다. 하지만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월드컵이 끝나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이명박 정권 때도 초반엔 좋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로부터 일제시대 강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 등 1200점을 돌려받았다.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노다 총리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철거를 요구, 한일은 정면 충돌했다. 이듬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후 한일 정상회담은 10년여간 열리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

▶보수화하는 일본 사회...한·미·일 삼각공조로 정상화해야=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2015년 박근혜 정권 때 아베 정부의 외무상으로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은 당사자다.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온건파이자 실용외교 주의자인 그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정부간 합의’에서 한발 짝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창수 센터장은 “우리가 손 벌리면 일본도 손 내미는 건 이명박 대통령 이전 시대에나 가능했다”며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은 우리가 손 내밀면 정반대로 간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로 들어섰다. 장기 불황과 저성장의 늪에서 젊은 세대들은 우경화했고, 진보의 견제 기능은 약화했다.

얼마 전 피습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해서도 국내에선 일본의 수출 보복 이후 ‘노(No) 재팬’ 불매운동을 ‘노 아베’라고 부를 정도로 비판적 정서가 크지만, 일본 내에선 패배국가 이미지를 벗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인 탁월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주류다.

작년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틀 후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크게 승리했다. 강경파 구심점인 아베 전 총리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당내 계파가 적은 기시다 총리가 정국을 장악하려면 보수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르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만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면 한국의 완충 역할이 필요한 만큼 한·미·일 삼각 안보 동맹 강화, 한·미·일 정책 공조에 거는 기대는 클 것이란 분석이다.

우리 정부도 한일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버리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한국도 글로벌 안보의 중추국가 역할을 해야 할 시기이며, 글로벌 중추국가로 가기 위해선 이웃 국가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풀어야한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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