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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제초제 선물’과 치유농업

지난봄에 ‘난감한’ 선물을 하나 받았다. 산과 들녘이 생명의 색, 치유의 색인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시기에 때마침 받은 선물 아닌 선물, 그것은 바로 제초제였다. 인생 2막의 삶터이자 일터, 그리고 쉼터로 선택한 강원도 산골에서 받은 ‘제초제 선물’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청정’지역이라는 수식어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농촌 대부분은 이미 제초제와 농약에 중독되어 있다.

선물로 받은 제초제는 그나마 맹독성이나 고독성이 아닌 보통 독성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를 사용하는 이들의 거부감도 덜할 터. 실제로 안전수칙 준수는커녕 마스크도 없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제초제를 치는 장면도 이젠 낯설지 않다.

그러나 보통 독성이라고 해도 자주 많이 치면 해롭긴 마찬가지. 빨간색 경고 문구 또한 전혀 ‘보통스럽지’ 않다. ‘중독 증상이 있을 때는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섭취했을 경우에는 바로 소금물로 토하게 하고 의사의 지시와 치료를 받아라. 음독 후 2시간 내에는 위세척이 가능하다’ 등등.

최근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도시민을 대상으로 귀농·귀촌 강의를 했다. 규모 있고 멋스러운 최신 시설의 건물과 주차장, 그리고 주변 논에서는 벼들이 푸릇푸릇한 생명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반면에 진입로 주변과 논둑에는 제초제를 맞아 누렇게 말라 죽은 풀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푸른 벼와 고사한 풀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 모습에서 도시민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요즘 치유농업이 핫하다. 지난해 신설된 국가기술 자격인 ‘치유농업사’(2급)는 응시 자격을 얻으려면 먼저 치열한 교육생 선발 경쟁부터 치러야 할 정도다. 이 치유농업의 바탕인 농촌 또한 치유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찾아온 도시민에게 치유를 주려면 농촌에 살며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부터 치유의 일상을 영위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제초제 선물’에서 보듯이 치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농업·농촌에서 제초제나 농약 살포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농가가 모여 있는 마을 안팎과 학교 주변, 체험·교육농장 등에 대해서는 이를 규제해야 한다. 농약을 자주 많이 뿌릴 수밖에 없는 작목의 경우 마을 안팎과 학교 주변 농지는 아예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맞다. 대신 이런 규제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책으로 친환경 직불금 등을 연계해 추가로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무더위와 장맛비가 반복되는 요즘, 필자는 틈만 나면 제초제 대신 무거운 예초기를 둘러메고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긴 옷과 장화,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힘든 작업을 마치고 나면 몸은 이내 파김치가 되고는 한다. 그래도 나와 가족, 이웃의 건강을 위해 기꺼이 감수한다. 벌써 햇수로 13년째다.

전국의 농촌 구석구석을 답사하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 농촌의 자연환경은 10여년 전에 비해 더 나빠졌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만연한 제초제와 농약 불감증이 주요 원인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치유’를 내걸려면 무엇보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농촌의 모습부터 회복해야 한다. 제초제를 선물하는 곳이 아니라 도시민에게 치유를 선물하는 곳 말이다. ‘자연’이 곧 ‘치유’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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