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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라이프] 하이힐과 호신술

호신술 강사 초기 몇 년간은 서울시 명예교사 및 용산구 여성안전 프로젝트 활동을 하며 관내 중·고등학교에서 호신술 수업을 많이 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서 맺음말 삼아 특히 강조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부당한 힘의 행사가 부당하다고 나무랄 수 있는 사회적 힘(여론, 도덕, 관습, 제도 등)을 형성하는 데 스스로 동참하고 그 힘에 기대거나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호신술”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들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써야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며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를 고민하며 참여해야 하는 이유라고도 했다. 당시 학생들에게 이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은 참 좋아하셨다. 도덕 수업이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왜 질서를 지키고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는데 뜻밖에 호신술 수업에서 이런 얘기를 해주니 반갑기도 하고 설득력도 있더라면서 말이다. 호신술 수업이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나 역시 참 다행스러웠고 이후 다른 수업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강조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정치·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것과 호신술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과거에는 여성호신술 수업을 듣는 직장여성들로부터 위급한 순간에 도망을 치려고 해도 짧은 치마와 하이힐 차림으로는 빠르게 뛰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다. 가능하면 운동화를 신고 다니라고 얘기하면 직장에서 눈치가 보여서 혹은 아예 근무복장 지침이 있어서 그럴 수 없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이처럼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직장여성들에게는 짧은 치미와 더불어 굽 높은 구두가 기본적인 복장이었다. 1995년을 그린 지난해 개봉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여사원 전체가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그 결과, 위험에 닥쳐서도 치마와 하이힐 등의 복장 때문에 적절히 대응하고 안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빼앗겨야만 했다.

하지만 직장문화가 점차 바뀌고 복장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제는 그런 조언이 더는 비현실적인 얘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 더 많은 여성이 일상에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서 달리기나 발차기를 꼭 호신 목적이 아니라 평소 운동 삼아서도 연습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적 인식 변화와 함께 경찰의 성폭력 전담 대응 시스템이 갖춰지고 법원의 판결 경향 등도 달라지면서 여성들이 성폭력 상황에 대해 과거에 비하면 훨씬 적극적인 법적·사회적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모두 누군가의 시도와 노력, 끈질긴 투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또 어떤 이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가정, 노약자, 장애인 등 더 많은 사회적 약자가 더욱 자유롭고 안전해질 수 있는 사회적 호신술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동안 많은 문화적 관습적 변화가 생겼다. 만약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그러한 변화와 노력의 결실이 포함돼 있기를 바란다.

김기태 A.S.A.P. 여성호신술 대표강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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