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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칼럼] 제대로 철든 지구

쯧쯧, 언제쯤 철이 들는지. 제발 얼른 철 좀 들어라! 다행히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철 좀 들었다. 뒤에 다시 밝히겠지만 철이 아주 제대로 들어 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세 가지의 재료를 주셨는데, 금속과 세라믹과 고분자가 그것이다. 주기율표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듯이 금속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누가 뭐래도 금속의 대표는 ‘철’이다. 인류가 철을 이용하면서 농업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증가했고, 전쟁은 국가 단위의 총력전이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는 지구 문명의 토대 격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철은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 26번에 해당하며 ‘Fe’라는 기호로 표시된다.

지구가 철들게 된 히스토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빅뱅으로 인해 우리 우주가 탄생한 시점에 세상에는 원자번호 1번 ‘수소’와 2번 ‘헬륨’이 거의 전부였는데 시간이 흘러 우주 온도가 식어가면서 그 혼돈 가운데에 별(항성)이 탄생하고, 그 별의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서 더욱 무거운 원자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행성인 우리 지구는 별(항성)이 폭발해 생긴 우주 먼지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구가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철’은 이미 들어 있었다.

너무나도 다행인 건 우리 지구가 적당히 철이 든 것이 아닌 아주 충분히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중·고교 ‘물상’ 수업시간에 우리 모두가 열심히 외운 것이 있다. 지구 껍데기인 지각에 가장 풍부한 원소들의 순서다, ‘O, Si, Al, Fe, Ca, Na, K, Mg’ 등에도 역시나 ‘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하늘에라도 닿을 것 같은 고층 빌딩의 뼈대와 끝도 없이 뻗어 있는 철로를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너무 적게 매장되어 있어 희소 원소라고 불리는 것들이 즐비한 것을 고려하면, 발길에도 차일 정도로 흔한 철광석의 존재는 인류에게 있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알루미늄’은 ‘철’보다 흔하지만 정제법이 어렵고 비싼 이유로 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철’은 혼자 있을 때는 우주에서도 가장 안정한 원자이다. 가히 ‘나 혼자 산다’의 끝판왕이다. 앞에서 가벼운 원자는 핵융합에 의해 점점 더 무거운 원자로 변해 최종적으로 ‘철’이 된다고 했다. 한편 무거운 원자는 붕괴하여 점점 가벼운 원자가 되는데 그 종착지가 바로 ‘철’이며, ‘철’ 이하로는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우주에서 ‘철’보다 안정한 원자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철’이 혼자가 아닐 때는 세상에 이렇게나 불안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거의 모든 금속이 다 그렇지만 ‘철’이 ‘산소’를 만나면 금방 반응하여 산화가 일어나니까 말이다. 즉, 녹이 슨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자연에서는 ‘철’이 아닌 철광석 형태의 산화물로서 존재하게 된다. 지구의 탄생 후 기나긴 세월이 흘러 기원전 15~6세기에 이르러서야 히타이트인이 인류 가운데 처음으로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는 데에 성공해 원래의 ‘철’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술이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으로 전파됐고 이후에는 한반도에도 넘어오게 됐다.

오늘날에는 인간에게 철을 되돌려주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커다란 제철소를 운영 중이다. 섭씨 1000도가 넘는 화염 앞에서 방화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며 쇳물과 사투를 하는 근로자의 사진과 영상이 익숙하다. 바로 45억년 동안 켜켜이 쌓인 지구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인류의 장엄하고도 뜨거운 몸부림이다.

박영조 한국재료연구원 박사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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