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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횡령 사고 ‘순환근무제’가 백신?
일선 현장에서 볼멘소리
영업점 2~3년, 본부는 최대 5년
내규로 정해놓고 탄력적 운용
법제화땐 전문성 저하·편법 우려
우회적 회피 방법도 얼마든 가능
시중은행 “내규 바꿀 계획 없다”

우리은행 직원의 ‘역대급’ 횡령사고로 은행권 순환근무제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들이 2013년 이후 내규에 순환근무제를 반영해왔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도덕적 해이를 막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개인의 일탈을 순환근무제 법제화로 다스리려 할 경우 전문성 저하, 편법 등이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내규에 순환근무제 관련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사별로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대부분 영업점은 2~3년 주기로 이동하는 것이 골자다. 이밖에 본부 부서는 최대 5년까지를 기한으로 두고 있다.

무조건 근무 시점을 채웠다고 해서 100% 이동해야하는 건 아니다. 전문성이 있는 기업금융(IB), 프라이빗뱅커(PB), 감사 업무 등은 근무기간을 탄력적으로 둘 수 있다. 모두 각 은행 내규에만 반영돼있을 뿐, 은행법 시행령이나 감독규정에 없기 때문에 은행 상황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은행들이 내규에 순환근무제를 포함하기 시작한건 2013년부터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순환배치 인사운영 관련 유의사항 통보’라는 공문을 보내 ▷직원 순환근무 적용 대상 ▷순환주기(3년 안팎) ▷예외 인정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내규에 담으라고 지도했다. 국민은행의 국민주택기금 횡령이나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연달아 터진 탓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은행의 횡령 사건을 계기로 법제화에 대한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우리은행 직원은 기업개선부에서만 10년이상 근무하면서 문서위조를 통해 수년간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순환근무가 강제성이 없는 탓에 이를 막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우리은행이 대표 사례로 꼽혔을 뿐, 다른 은행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에서 터진 횡령·배임·사기 등 금융사고 총액은 116억3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관계자는 “고객과 유착을 막기 위해서 전문성이 있는 부서도 5년 단위로는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은행들마다 인사 자율성이 있고, 인력 운영 현황이 그때그때 달라 일괄된 기준으로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환근무제를 명시화할 경우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순환근무제를 법제화하지 않았는데, 법제화 할 경우 전문성 저하가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또한 이를 강제할 경우 우회적인 방법으로 회피하는 문제도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드문 경우지만 영업점 PB의 경우, 내규에 따라 A센터에서 B센터로 이동한 뒤에도 여전히 A센터로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장기간 신뢰를 쌓아온 고객이 특정 PB와 지속적으로 거래를 원하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통제의 문제를 무작정 순환근무제 제도화로 해결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양산될 수 있다”며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는 인력 운영의 특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지점처럼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횡령 사고에도 당분간 내규를 바꿀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복수의 은행 관계자들은 “해당 원칙에 대한 변경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최근 각종 사건 사고가 불거진만큼 명령휴가제를 더 철저히 지키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은 기자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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