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유효기간 불과 한달…연장, 환불 못해줘”…무법지대 상품권 교환권
지나치게 짧은 상품권 유효기한
표준약관… B2B는 거의 안지켜
'상품권 교환권' 꼼수로 소비자 속이기도
상품권법 폐지 후 법률 공백
[사진=한 상품권 판매업체 홈페이지. 상품권 교환권의 유효기한이 30일 남짓으로 설정돼 있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 A 씨는 올해 초 직장에서 명절 선물로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 교환권을 선물로 받았다. 최근 상품권으로 교환하려 보니 이미 유효기한이 끝나 있었다. 기한은 고작 2개월이었다. 판매업체에 문의했지만 기한 연장이나 환불이 안된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과 얘기해보니 못쓰고 기한이 끝나버렸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가 커지자 회사 차원에서도 판매업체에 항의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A 씨는 “유효기한이 너무 짧아 회사가 판촉 상품을 싸게 얻어 뿌린 건가 오해했는데, 회사도 제 값 다 주고 산 거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상품권 시장이 무법지대로 방치되며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약관을 만들었지만, 회사나 단체가 상품권 업체로부터 기업간거래(B2B) 방식으로 대량 구매하는 상품권은 상당수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상품권 교환을 위한 상품권’이란 형식이 소비자 눈을 속이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10만원 주고 산 10만원 짜리 상품권… 유효기한 한 달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모바일 상품권 시장 규모는 5조9534억원으로 2017년 1조2016억원 대비 4년 새 5배 가까이 성장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모바일 상품권 구매가 폭증했다”며 “소비자 피해 규모도 머지포인트 사태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거라 짐작되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다 보니 사회적으로 무관심한 상황”이라 말했다.

온라인·모바일 상품권은 1999년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상품권법이 폐지된 후 규율하는 법이 없다.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2020년 ‘신유형 상품권 표준약관’을 제정해 업체들의 준수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상품권의 유효기한은 최소 1년 이상이어야 하고, 연장 요청도 가능해야 하고, 유효기한이 지나면 발행 후 5년까지는 90%를 환불해줘야 한다.

문제는 표준약관은 권고사항일 뿐이라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가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방식으로 구매하는 상품권은 대체로 지켜지고 있지만, B2B 방식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상품권 판매 업체마다 유효기한 및 환불 정책이 제멋대로다. 어떤 업체는 유효기간이 한달 남짓으로 지나치게 짧기도 하거니와, 판매하는 상품마다 29일, 30일, 59일, 60일 등으로 모두 다르게 설정해서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휴대폰으로 굉장히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세상이기 때문에 깜빡하다 보면 상품권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릴 수가 있다”라며 “판매업체가 의도적으로 소비자의 착오나 망각을 노린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상품권’ ‘상품권 교환권’은 구별해야

‘상품권으로 교환하기 위한 상품권’인 경우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카카오톡 ‘기프티콘’이 대표적이며, 수십개의 중소업체들이 있다.

가령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인 경우 해당 업체들이 판매하는 것은 ‘백화점 상품권’ 그 자체가 아니라, ‘백화점 상품권 교환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상품권이다. 이는 신세계가 발행한 것이 아니고, 교환권 판매업체가 발행한 것이다. 때문에 신세계의 판매정책이 적용되지 않고, 교환권 판매업체의 정책이 적용된다.

가령 신세계는 얼마 전부터 모든 상품권에 대해 유효기한을 완전히 없앴다. 그러나 이는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 교환권’이라는 상품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품권 판매업자들이 신세계, 롯데 등으로부터 상품권을 대량 매입해 이를 직접 팔았지만, 이제는 ‘상품권 교환권’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파생 상품권’을 만들어 팔고 있다”며 “이 경우 유효기한, 환불 등의 판매정책을 자체적으로 세울 수 있어 소비자 보호망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판매업체 자신들은 신세계의 소비자 보호 정책에 따라 유효기한이 무한정인 상품권을 구매해놓고, 이를 ‘교환권’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유효기한 한 달짜리 상품권으로 내놓는 것은 사기나 다름없다”라며 “‘상품권’과 ‘상품권 교환권’을 구별할 수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매 시 유효기한이나 환불 등에 대한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구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에는 지난해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로 상품권법 제정안이 제출돼 있다. 금융위가 주무부처로 관련 규제를 하는 내용이지만, 언제 통과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paq@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